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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글날 하고 싶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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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글날 하고 싶었던 말

입력
2010.10.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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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 연구와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그러니 오늘의 주인공은 한글이다. 한글을 한국말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알파벳과 영어를 헷갈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이며 최고의 문화재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자랑만 하고 있을 것인가? 최고의 문화재라면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자랑만 하고 마는 것은 그 이상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가. 그래서 언론은 매년 같은 내용을 다루고 정부도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그런 한편으로 한글날을 소홀히 여긴다는 불만도 많다.이런 상황은 한글로 먹고 사는 소위 한글 전문가들 탓이 크다. 한글을 부려먹기만 했지, 연구ㆍ개발에는 소홀하다.

한글의 가치는 단연 소리 값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많은 문자 가운데 한글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영어가 세계 최고 언어라지만 알파벳은 그렇지 못하다. 알파벳은 한글처럼 소리를 표기하지 못하고 오직 단어 표기에만 쓸 수 있다. 단어 철자가 틀리면 마치 획이 틀린 한자처럼 읽을 수조차 없다. 그러나 한글은 글자 하나라도 훌륭히 제 소리를 낸다.

한글의 우수성은 정보화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 한자는 컴퓨터에 바로 입력할 수 없어 일단 소리대로 알파벳을 친 음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의 '가나'입력도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속도가 생명인 현재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소리 값을 그대로 살려 곧바로 입력하는 데는 한글처럼 편리한 글자가 없다. 외국인들도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이 어떻게 한글을 새로 배워 쓰겠느냐, 애국심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핀잔이 따를 듯하다. 그러나 휴대전화 글자 단추 10개로 아무 불편 없이 남녀노소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미국 사람들도 휴대전화로는 문자 메시지 작성이 쉽지 않아 26자로 된 '쿼티 자판'을 갖춘 스마트폰이 유행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휴대전화 단말기에 26자를 배열하다 보니 글자가 너무 작고 촘촘해서 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마 이 때문에라도 스마트폰이 제대로 된 컴퓨터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국인이 어떻게 한글을 배우겠느냐고 묻기 십상이지만, 글자 모양을 전혀 모르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 한글을 배워 이름을 쓰는 데 정확히 45분 걸리는 것을 보았다. 어떤 기계든 새로 사면 하루 이틀 안내서를 보고 익히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는 일이다. 넉넉잡아 한두 시간이면 한글을 배워 문자 메시지를 우리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왜 배우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이 한글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연구도 권유도 해보지 않은 채 지레 안 될 것이라고 단념하는 태도로는 백날 가도 한글 자랑이나 하고 있게 될 것이다.

한글날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언론이나 연예인들이 제발 되지도 않은 영어 좀 안 썼으면 좋겠다. '엘레강스하다'느니 '시크한 스타일'이라느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오소독스하다'는 표현까지 쓴다. 한글은 한자 사이에 토 다는 데나 쓰던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뜻인가.

이런 분들은 외국어를 쓸 때마다 이렇게 되뇌길 바란다. "나는 이 시대의 최만리다."

신부용 KAIST 문화과학대 한글공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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