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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14> 홈리스월드컵 참가 후 귀국한 오현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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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희망] <14> 홈리스월드컵 참가 후 귀국한 오현석씨

입력
2010.10.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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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빅이슈 가을호가 나왔습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앞에서 오현석(40)씨가 새로 나온 잡지를 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행인들 대부분이 무심하게 스쳐가지만 그는 그래도 새 잡지의 출간 소식을 쉬지 않고 전한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 때 한 젊은이가 지갑을 열어 잡지를 샀다. 오현석씨는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

빅이슈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1991년 영국에서 처음 만든 잡지로, 한국판은 7월에 창간했다. 서울에는 오현석씨 말고도 30여명의 노숙인 출신 판매원이 거리에서 잡지를 판매하는데 3,000원 하는 잡지 한 권을 팔면 이들에게 1,600원이 주어진다.

선한 얼굴의 오현석씨는 8월 2일 거리 판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무척 쑥스러워했는데 지금은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잡지 구입을 권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오늘은 '노숙인 자활잡지 3,000원'이라는 안내문을 든 그의 왼손이 붕대에 감겨 있다. 9월 19~2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8회 홈리스월드컵 대회에 참가했다가 입은 부상 때문이다. 11인조 정식 경기가 아니라 4명이 팀을 이룬 미니 축구 풋살 경기였는데 그로서는 대회 참가가, 예전에는 하지 못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골키퍼로 나섰다가 손가락 다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9월 21일 열린 케냐와의 예선 경기에서 상대편의 슛을 막다가 왼손 약지가 꺾였다. 다른 노숙인 5명과 함께 한국팀 빅이슈코리아축구단 선수로 출전한 그는 주 포지션이 미드필더였다. 하지만 주전 골키퍼 이영길씨가 연습 도중 다쳐 대신 나섰다가 손가락을 다쳤다. 상대가 슛을 하면 주먹을 쥔 채 공을 쳐내라고 코치가 일러주었지만 미처 그럴 틈이 없었다. 현지에서 임시조치를 취한 뒤 한국에서 검사를 했더니 인대가 늘어나고 뼈에 충격이 왔다는 판정이 나왔다.

한국은 뉴질랜드에만 7대3으로 승리했을 뿐 나머지 10경기에서 모두 패배, 1승 10패의 성적으로 남자 참가국 43개국 가운데 꼴찌를 차지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현석씨는 공격수, 미드필더, 골키퍼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4골을 넣었다.

"상대 선수들은 실력이 너무 좋았어요. 프로 선수 같았습니다. 몸싸움을 하다가 튕겨나가기도 했고요."

그들과 달리 우리는 팀을 급조해 출전했다. 그 전에 제대로 축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맹연습을 실력이 갑자기 늘지는 않았다. 참가비용도 네티즌과 대한축구협회 등의 지원을 얻어 어렵게 마련했다.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회에 나선 노고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자부심 커지고 자신감 얻어

"축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어요. 생김새 다른 외국인들과 어울린 것 그 자체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신 있게, 적극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잡지를 판매한다. 낯선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사는 게 즐거워졌고 정신적으로 여유도 생겼다.

그의 근무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12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다. 판매가 부진하면 시간을 늘이는데 그렇게 해서 하루 평균 20~30부, 많게는 40부 정도를 판다. 토요일은 일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있으며 일요일은 대개 쉰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빅이슈가 한국에서 발간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심한 행인 틈에서도 가끔 격려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거리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아주머니가 잡지 한 권을 사가더니 30분쯤 뒤 포도즙을 들고 다시 오셨어요. 더운 날 길에서 일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잘 먹어야 한다면서요. 그 포도즙을 빅이슈 판매하는 다른 형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첫 노숙의 기억

오현석씨는 잡기 판매를 하기 전 영등포구 신길동, 구로구 신도림동의 공원 벤치 등에서 노숙을 했다. 깔개를 깔고 담요를 덮고 잠을 자고는 가까운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었다. 폐지, 고철 등을 주워 팔았지만 그것으로 주거지를 마련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 인천 남동공단의 기업체에 취직하려다 무산된 것이 결정적으로 자신감을 꺾었다. 당시 그는 그 회사에 면접을 하러 갔으나 "당신은 필요 없으니 그냥 집으로 가라"는 말에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그는 취직을 위해 제출한 학교 생활기록부에 좋지 않은 내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그 기록이 남아있는 한 자신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다. 하는 일 없이 집에 있기가 미안해 1998년 집을 나왔다. 구로구 가리봉동의 신문보급소에서 일하고 먹고 자면서 약간의 돈을 모아 고압가스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취직은 할 수 없었다. 그 뒤 보급소 일을 그만 두고 폐지 수집 등을 하며 PC방에서 지내다가 2006년 12월 노숙을 시작했다.

뒤늦게 안 아버지의 죽음

몹시도 춥던 그날 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돈이 없어 종일 굶다가 동네 노래방 지하에 판자를 깔고 잠을 청했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다음날 지방으로 내려가 산 비탈에서 그물망 설치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동료가 자신을 확 낚아챘다. 잠을 설친 탓에 깜빡 졸았던 것인데 자칫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그를 동료가 구한 것이다.

첫 노숙을 할 때만 해도 노숙이 길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노숙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끔 서울역까지 무료 급식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잠을 잘 때도 함께 노숙하는 사람이 많아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 때를 돌아보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 누워 있었는데, 자신이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아버지는 2008년 끝내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6개월 뒤 주민등록등본에 아버지가 기재되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싶어

그가 빅이슈 판매원이 된 것은, 올해 7월 영등포의 한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가 안내문을 받고서다. 그는 그것을 읽고 곧장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갔다.

잡지 판매를 시작하면서 노숙은 끝이 났다. 좁기는 하나 고시원에 들어감으로써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판매도 차차 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다. 오현석씨는 "노숙할 때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했는데 지금은 삶을 조금씩 계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그것을 위해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로 보자면 기술을 배워 보일러 관련 일을 하고 싶고 생활로 보자면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언제 결혼할래? 좋은 사람 만나야 할텐데"라고 자주 말했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제 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어머니에게라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소박하지만 절실한 그의 소망이다.

■ 홈리스 월드컵이란

홈리스월드컵은 노숙인이 재기의 의지와 삶의 희망을 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국제 축구 대회다.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18개국의 노숙인 축구팀이 참가한 가운데 첫 대회가 개최됐으며 이후 스웨덴의 예테보리,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덴마크의 코펜하겐, 호주의 멜버른,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차례로 대회가 열렸다. 올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8회 대회에는 남녀 합쳐 65개국의 축구팀이 출전했다. 내년 9회 대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홈리스월드컵은 전세계 노숙인에게는 일종의 축제로, 해마다 3만여명의 노숙인이 대회 참가를 위해 훈련을 하고 있다.

출전 선수의 약 70%는 대회 참가를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고 주최 측은 설명한다. 가정으로 돌아가고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구하며 교육을 받고 타인과의 관계도 좋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처음 출전했는데 빅이슈코리아 측이 대회 참가를 신청하고 주최측이 받아들여 성사됐다. 한국팀은 중동의 두바이를 경유, 모두 30시간의 비행 끝에 브라질에 도착했다.

오현석씨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축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빅이슈코리아 측은 노숙인과 비노숙인이 함께 참가하는 축구대회의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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