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뒤의 입가심이 아니다. 번듯한 메인 메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디저트 이야기다. 청담동 가로수길, 서래마을, 홍대앞, 삼청동 등에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파티셰들이 디저트 전문 카페를 잇따라 열며 트렌드를 이끌더니 이제는 디저트를 코스나 뷔페로, 한 끼 식사처럼 먹을 수 있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타르트, 마카롱, 수플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면, 아직도 디저트라면 조각케이크와 커피라는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다면 이 기사를 읽지 말 것. 먹는 폼이나 값으로 웬만한 식사보다 더 한 디저트에 화를 낼지도 모르므로.
뷔페로 먹고
아무리 단 것을 좋아해도 누가 디저트로 배를 채우랴. 일반적인 생각은 그렇지만 8월 서울 홍대 앞에 스위티에(Sweetier·02-326-1793)가 문을 연 이후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2만원의 점심뷔페는 20여석의 1층 좌석이 다 차고, 열 접시 넘게 먹는 이들도 없지 않다. 대부분 20대 여성이나 간혹 남자들끼리 맘 먹고 와서 전 메뉴를 섭렵하기도 한다. 일본 동경제과학교에서 공부하고 초콜릿 전문점 테오브로마 지점장으로 일한 김기남 파티셰가 지난해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나라면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 문을 연 곳이다.
생크림 케이크, 파운드 케이크, 쉬폰, 브라우니 등 낯익은 케이크류부터 토마토 사케 절임, 와인 쥬레, 카카오 후란보, 요거트 무스, 카라멜 후르츠 등 쉽게 찾기 어려운 메뉴까지 30종이 뷔페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토마토 사케 절임은 정종에 졸인 방울 토마토로, 토마토를 깨물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사케향이 상큼하다. 와인 쥬레는 모양은 젤리이나 백포도주 맛이 풍겨 색다르다. 김씨는 “슈크림은 매일 계란을 저어서 만들고, 생크림에도 휘핑 크림을 전혀 쓰지 않는 등 좋은 재료와 신선한 맛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열고 오후 4~5시와 월요일은 음료와 단품을 먹을 수 있는 카페로만 운영한다.
특급호텔들이 단기 행사로 디저트 뷔페를 연 적은 있지만 상시 뷔페점은 드물다. 서울 역삼동의 신명제과(02-566-3029)가 케이크 뷔페를 운영한다.
코스로 먹고
1일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쿄토푸(02-749-1488)는 두부 전문 디저트 카페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06년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열어 2007년 에 ‘베스트 뉴 레스토랑’의 하나로 선정된 일본식 디저트 바&다이닝. 매일 만든 두부를 비롯해 콩, 현미, 미소된장, 마차, 참깨, 유자, 와사비 등 일본 식재료를 이용한 디저트가 이색적이다.
쿄토푸에는 코스로 먹는 디저트 ‘카이세키’가 있다. 원래 카이세키는 일본 정식 요리를 뜻하는 말. 가격도 1만9,000원으로 식사값으로도 싸지 않은 가격이다. 쿠로시럽(흑설탕시럽)을 얹은 시그니처 스위트 토푸(두부)가 코스의 첫 순서. 두부라기보다는 푸딩의 매끈한 질감이다. 메인은 된장향이 살짝 풍기는 미소 초콜릿 케이크, 진한 녹차맛의 마차 크림 브륄레, 두유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온다. 끝으로 겐마이(현미) 초콜릿, 현미와 마차를 넣은 쿠키와 피낭세가 나온다. 겐마이 초콜릿은 일본산 현미를 볶아 넣은 것으로, 질감은 너무 무르지만 구수한 누룽지 맛이 나는 것이 이색적이다.
디저트에 단 사케를 걸치는 것도 색다른 시도. 스파클링 사케는 샴페인에 가깝다. 디저트 외에 가벼운 식사인 세이보리 메뉴도 있다. 월요일 휴무.
3단으로 먹고
19세기 초 영국 베드포드 가문의 공작부인 안나 마리아가 시작했다는 애프터눈 티는 3단 스탠드에 풍성한 티푸드를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밤 늦게 디너와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에겐 사실상 늦은 오후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고, 서민들은 아예 고기를 곁들여 저녁으로 먹는 하이 티 문화를 형성했다.
유럽의 호텔들은 애프터눈 티를 호텔 개성을 담은 시그니처 서비스로 내세우곤 하는데 국내 호텔에서도 ‘한가로운 오후’의 문화를 맛볼 수 있다. 서울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02-317-3058)에서 오후 2~6시 맛볼 수 있는 애프터눈 티(2만7,000원)는 정통 영국식이다. 3단 은기 트레이에는 아랫단부터 스콘 마들렌 다쿠아즈 같이 오븐에 구운 메뉴, 햄 치즈 아보카도 등으로 속을 채운 핑거 샌드위치, 에클레어 마카롱 등 달콤한 메뉴가 채워져 있다. 따뜻한 스콘에 발라 먹을 생크림과 잼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의 명품 홍차 브랜드인 마리아주 프레르의 마르코 폴로, 웨딩 임페리얼 등 9종의 홍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자바섬에서 야생 사향고양이가 삼켰다가 배설해 부분 소화된 커피콩을 수확해 만든 루왁커피(3만5,000원)는 애프터눈 티와 함께 주문하면 1만원 할인해 준다. 보통 커피전문점에선 맛볼 수 없는 희귀하고 구수한 커피맛이 난다. 샴페인 세트(4만5,000원)로 긴장을 더 풀어볼 수도 있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도 로비라운지(02-6282-6735)에서 오후 2~5시 애프터눈 티(2만5,000원)를 제공한다. 훈제연어 샌드위치, 부드러운 스콘, 과일 타르트, 파운드 케이크, 계절과일 4종, 견과류가 올려진 초콜릿 등을 고급 차나 커피와 함께 맛볼 수 있다.
영국 귀족들이 그러했듯이 테라스의 티 파티 분위기에 젖고 싶다면 리츠칼튼 서울의 더 가든(02-3451-9271)을 찾아보자. 더 가든 야외정원에서 고급 차나 커피와 함께 스콘, 티라미슈, 계절과일 타틀렛, 베이비 슈, 레몬치즈케이크, 초콜릿 등을 즐길 수 있다. 1인 1만9,000원, 2인 2만5,000원.
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