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기본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나라.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취약국가(fragile state)에 대한 정의이다. 전세계 빈곤인구 10억 명의 대부분이 이런 취약국가에 살고 있다. 인류 공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설정한 새천년 개발목표가 2015년 시한까지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취약국가에서 빈곤문제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극적 개발협력정책 필요
국가가 취약해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같이 내전과 외침을 겪는 취약국가가 있는가 하면, 천혜의 자원을 갖고도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취약국가도 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안녕과 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나라도 있다. 북한이 그런 예다.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은행도 2011년 연례 보고서의 주제를 취약국가로 잡고 있다. 이런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진 데는 취약국가의 빈곤과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세계 안보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9ㆍ11 테러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던 취약국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의되었다. 인도양에서 출몰하는 소말리아 해적은 국제 교역에 심각한 위협이 된지 오래다. 영국 외무장관은 취약국가의 빈곤문제를 외면하면 런던 한 복판에서 또 다시 테러 사건이 터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도 취약국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개발협력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최근 한국은 빈곤국가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성장한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자칫 우리의 경험을 여러 사정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 원조를 받는 나라의 국가적 필요와 정치사회적 문제 등을 잘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개발협력 정책을 마련해야 품격 있는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세계 개발협력 정책을 총괄하는 제4차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취약국가의 경제사회적 발전 성과 등에 의미 있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만큼 주최국으로서 의제 설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정책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취약국가에 대한 선진국들의 원조가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된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협소한 도로를 개량해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농민들을 오갈 데 없는 부랑인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러 부족들 간의 세력관계를 외면한 채 손쉽게 정부를 구성하려다 심각한 내전을 유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실제 원조가 필요한 아프리카의 차드 부룬디 같은 나라는 원조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OECD 개발협력위원회는 취약국가 지원과 협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 사정을 중시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되 인내를 갖고 지원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원조를 받는 나라의 정부 스스로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구축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더불어 취약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효과적인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북한에도 인내심 갖고 지원을
취약국가에 대한 올바른 협력정책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북한이 취약국가라는 점 때문이다. 북한은 김정일위원장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김정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주민 생활은 안중에도 없이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천안함 사태가 보여주듯 북한의 안보적 위협은 여전히 실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취약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인내를 갖고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효과적인 개발협력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약국가 내부를 포함한 개발정책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하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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