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인 경남대학교는 1946년 독립운동 지사들이 국민대학관을 발족해, 1947년 국민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서울 남산에서 신익희 선생을 초대 학장으로 개교하였다. 한국전쟁 중 임시 수도 부산으로 대학을 이전한 것이 경남대가 지역에 남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이어 1952년에 합천 해인사 경내로 대학을 옮기면서 해인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됐다.
같은 해 8월 진주로 옮겼다가 1956년부터 마산, 현 창원시에 자리를 잡았다. 1971년 경남대란 지금의 이름을 가졌다. 대학이 이름과 반듯한 터를 잡기 위해 떠돈 해적이만 봐도 마치 근대사를 읽는 것 같다. 지난해 6월 국립인 진주의 경상대가 '경남국립대'란 이름으로 개명하겠다고 해서 소송이 진행됐는데 최근 특허심판원이 '경남대'의 고유한 이름의 역사를 지켜주었다.
국립 한경대가 경기국립대란 이름을 쓰겠다고 해서 역시 같은 건의 소송이 있어 1, 2, 3심을 통해 모두 현 사립 경기대의 이름이 지켜졌다. 뿐만 아니다. 광역시ㆍ도의 이름을 쓰는 울산대, 광주대, 대구대, 대전대 등도 사학이다. 이름은 역사이며 정체성이다. 그것을 빼앗아 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국적을 바꿀 수는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가 없는 법이다. 경남대 월영캠퍼스에 3ㆍ15 정신을 계승한 '10ㆍ18 부마항쟁 시원석'이란 표석이 있다. 그해 시월에 나도 가슴 뜨거웠던 경남대학생이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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