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를 연출한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謨ㆍ59)가 7일 개막식에 맞춰 부산을 찾았다. 2004년 자신이 연출한 영화 ‘연인’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후 6년 만의 방한이다. 이날 오후 영화제 개막에 앞서 만난 그는 “한국에 오면 삼계탕을 꼭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왔다. 삼계탕과 불고기를 무척 좋아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신작 ‘산사나무 아래’는 1970년대 초반 중국의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순정하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격변의 시대가 배경이지만 당대에 대한 해석보다는 사랑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주로 굴곡진 시대에 고통 받는 인간 군상을 그려온 그가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이머우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 원작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아 영화를 찍게 됐다”며 “단순한 사랑이라 해도 사랑 그 자체로 굉장히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중국 사회에 상업화와 물질주의가 심화하고 있는데 순박한 사랑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 주인공들처럼 청춘의 대부분을 문화혁명 속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국민당원 출신이어서 가족이 베이징에서 시골로 쫓겨나는 등 고초를 겪었던 그는 “문화혁명은 비극적인 일”이라고 규정했다. “슬픈 시대였고, 아픔과 고통의 시대였다. 성장기(16~26세)에 내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시대를 겪었으니 지금이 살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처럼 죽진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농담을 친구들과 종종 나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이머우 감독은 ‘국두’와 ‘귀주 이야기’ 등 작은 규모의 영화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영웅’이나 ‘황후화’ 같은 대형 시대극을 연출해 왔다. 그는 “다른 요소를 제외하고 사람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가 나와 가장 가까운 영화”라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ㆍ폐막식을 연출했고, 오페라 ‘투란도트’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영화가 제일 좋다”며 웃었다. “영화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예술가니까 무대 작업인 오페라에 마음이 끌린다. 올림픽 개ㆍ폐막식 연출은 예술적인 것 이외에 신경 써야 할 복잡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도 말했다.
만일 월드컵이 중국에서 열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제안이 들어오면 당연히 개ㆍ폐막식 연출을 맡을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대단한 축구광이다. 지인들끼리 ‘우리는 언제쯤 월드컵 한 번 개최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중국이 한국보다 축구를 못해 희망이 크지는 않다. 중국 축구가 한국만큼만 해도 바랄 것이 없다.”
그는 “한국의 영화와 TV드라마를 자주 보는데 좋은 연기자가 참 많다”고도 했다. 그는 그러나 “영화의 소재와 연기자의 조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와 일하고 싶다고는 섣불리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때 자신이 발굴해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배우 궁리(鞏利)와의 열애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요즘도 (궁리와) 전화를 자주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짧게 답했다.
부산=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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