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는 추석 연휴 첫 날 내린 집중호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한 곳이다. 4,500여 채의 주택과 상가가 침수돼 한가위를 지내려던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절망을 안겨줬다. 예상치 못한 수해로 취임한 지 석 달이 안 된 초보 단체장들도 덩달아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초선인 이제학(47) 양천구청장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아직 ‘수해 모드’다. 보름 가까이 입었던 작업복도 최근에야 벗었다.
이 구청장은 지난달 21일 고향인 전남 담양군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고향에선 돼지 잡고 플래카드 붙여 놓고 저를 맞을 잔치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폭우로 잔치는커녕 호된 청장식을 치렀습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한 그는 수해 현장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물을 퍼 나르며 쓰레기를 치웠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도배와 장판도 설치했다. 그럼에도 현장 반응은 싸늘했다. “현장에선 ‘이 물난리에 구청장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민들이 많았어요. 제가 ‘(구청장) 옆에 있습니다’고 말하자 화를 좀 누그러뜨렸습니다.”
매일 새벽 수해 현장에 나가 밤 늦게 녹초가 돼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열흘째 되던 날 몸에 이상이 생겼다.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이 충혈되고, 코 밑이 헐어 깊은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된 피해 주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몸을 챙길 여지가 없었다. “목민관은 아파서도 안 되겠다는 경험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이 구청장은 수해 발생 초기 나타난 국민적 관심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는 “수해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천구는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을 대상으로 적십자와 민간기업 등의 후원을 받아 아직도 도배 및 장판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현재까지 정부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금액은 200만원에 불과하다.
특히 피해 주민 상당수가 무직자나 일자리가 불안정한 저소득층이라 고통이 더욱 심각하다는 게 이 구청장의 설명이다. 그는 “관내 사회적기업을 통한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침수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서민임대주택을 건설해 달라고 서울시와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피해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 반드시 정부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난지역 지정 요건이 행정구역별로 피해액을 산정하도록 돼 있는 현행 법령은 매우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서로 이웃한 강서구 화곡동과 양천구 신월동이 같은 날 수해를 입었는데도 피해액을 따로따로 선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 권역별로 산정하면 두 자치구의 피해액이 재난지역 지정 기준인 95억원을 넘지만 자치구별로 산정하면 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 어렵다.
이 구청장은 “30년 가까이 양천에 살았지만 이번에 현장에 나가 그간 파악하지 못했던 주민의 요구사항을 많이 알게 됐다”며 “신고식을 세게 치른 만큼 값진 교훈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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