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절도와 강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재판을 본 뒤 유ㆍ무죄와 양형을 결정하라. 단 본인의 존재를 주배심원단에게 들키면 안 된다.'
5일 오전 11시 서울남부지법 406호 대법정에서 열린 송모(48)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그림자 배심원'(shadow jury)으로 참여한 숙명여대 법학과 학생 6명과 본보 기자를 포함한 기자 6명에게 내려진 특명이다. 그림자 배심원들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7명의 주배심원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87석의 방청석에 흩어져 앉았다.
피고인은 출소한지 한 달도 안 돼 지난 5~6월 서울 영등포동 일대에서 취객 등을 상대로 4차례 돈을 훔치거나 빼앗은(강도 및 절도) 혐의로 기소됐다. 피고인이 2건의 절도 혐의에 대해서는 자백했기 때문에 재판의 핵심 쟁점은 피고인의 2차례 강도 혐의가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피고인은 "오른팔을 다쳐 움직이기 힘든데 어떻게 폭행을 하나. 내가 돈을 훔치기 위해 껴안자 피해자들이 몸부림치다 엎어진 것"이라며 강도혐의를 부인했다. 반면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 2명은 "앞에서 뒤통수를 가격해 내가 기절하자 돈을 빼앗아 갔다" "뒤에서 밀어 쓰러지자 돈을 강탈해 갔다"고 팽팽하게 맞섰고, 검찰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동종전과가 다수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오후 6시 선고만 앞둔 상태에서 그림자 배심원들은 6명씩(기자 3명, 학생 3명) 2조로 나눠 판사 1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의 평의ㆍ평결을 했다. 본보 기자가 포함된 A조에서는 "피해자는 뒤통수 왼쪽 부분을 맞아 쓰러졌다고 하는데 피고인이 오른팔을 다쳤다면 피해자의 앞쪽에서 과연 뒤통수를 때릴 수 있었을까 의문"(숙대생 이모씨)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왔지만, "피고인은 수사 단계에서는 피해자들을 밀었다고 주장하더니 법정에서 번복했고 피해자들의 증언도 신빙성이 있었다"(숙대생 고모씨)는 유죄 의견이 다수였다.
결국 A조는 강도가 유죄인지에 대해 5명은 유죄, 1명은 무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양형에 대해선 상습범이지만 자백을 했다는 비슷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6명 모두 징역 1년 6월~징역 7년까지 제 각각이었다.
실제 배심원단은 강도 혐의 2건 중 한 건에 대한 혐의는 4명이 유죄로, 3명은 무죄로 봤고, 나머지 3가지 혐의는 7명 모두 유죄로 평결했다. 또 양형은 징역 5년에 대한 의견이 3명으로 가장 많았고 징역 6년과 징역 7년 의견을 각각 2명씩 내놨다. 오후 8시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홍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송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림자 배심원단은 더 많은 시민이 재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숨은 존재'이기 때문에 재판과정에서 궁금증이 생겨도 주배심원과 달리 질문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또 모의평결이라 재판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배심원들의 진행시간에 맞추다 보니 양형을 논의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림자 배심원 제도란
국민참여재판을 참관한 뒤 피고인의 유ㆍ무죄 여부 및 양형에 관한 평의ㆍ평결을 한다는 점에서 무작위 추첨되는 주배심원단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평결내용은 판결에 반영되지 않고 평결과정도 판사에게 공개된다는 점에서 주배심원단과 다르다. 주배심원단에게 노출되지도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목표로 법원이 지난달부터 법학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하고 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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