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미국 네바다주 카지노타운의 26층짜리 MGM그랜드 호텔 2층에서 일어난 불로 2시간 만에 73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불이 커질 대로 커진 후 건물 내부로 넘어 갔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이다.
1996년 일본 히로시마시의 아파트 9층 발코니에서 난 불은 30분도 채 안되어 발코니를 타고 20층까지 확산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발코니 난간에 플라스틱 바람막이를 설치한 것이 원인이었다. 2009년 중국 베이징의 중국중앙방송국(CCTV) 사옥 화재도 불이 외벽을 타고 확산되면서 5시간이나 지속돼 소방관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서울 삼성동 건물 외벽에 불이 붙어 순간적으로 1층 외벽을 홀랑 태웠다. 같은 해 경기도 이천에서는 여러 곳의 초대형 냉동 창고에서 연속적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수십 명이 죽고 수만 평 건물과 물품이 전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큰 불이 나면'왜 우리나라에서만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가'라며'여기도 위험하고 저기도 큰일 났다'는 식으로 '겁주기'에 매달리시 일쑤다. 이 바람에 정작 진지한 고민이나 합리적 대책을 유도하는 의견은 '진실'에 대한 물타기 시도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저마다 지적하듯, 초고층 건물에는 소방 사다리가 도달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에 지은 초고층에는 대피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정작 불이 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막막한 듯한 의문에는 사실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먼저, 초고층 빌딩은 소방차가 화재 진압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세워졌다. 대신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화재진압 효과가 큰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두 번째로, 고층 건물의 대피 공간은 중국과 싱가포르에서만 의무화하고 있다. 주거 밀도가 낮은 건물에서는 대피 공간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계륵 같은 공간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차라리 그 돈을 세대별 구획 등 다른 안전시스템에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에서는 소방헬기의 수평 방수를 이용한 초고층 화재진압 방법도 소개한다. 하지만 불과 1톤 정도의 물로 외벽 틈새의 불을 끌 수 있는 것처럼 믿고 부러워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는 그 10배인 10톤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초대형 헬기가 있다. 그러나 헬기는 애초 산불이나 하치장 화재 등 노출된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지 건물 내부의 불을 끄는 것은 아니다.
이번 부산 해운대 화재의 불이 번진 경로가 외벽 내부라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이고 이제부터 풀어야 할 과제이다. 신축 건물의 외벽 재료를 일정 부분 규제하면서, 가연성 외벽이 설치된 기존 건물의 화재가 외벽 내부로 전파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방안을 어떻게든지 마련해야 한다. 외벽 연결부나 창틀 부위에 화염차단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구해야 한다. 아울러 청소용품 수납창고를 비롯해 규모가 작아서 제외시킨 공간도 스프링클러나 자동식 소화설비를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재난은 예방에 못지않게 사후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 안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방호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학습과정은 자칫 잘못하면 이해타산을 좇아 사회를 기만하는 기회로 악용될 수도 있다. 합리적 논의를 통해 올바른 교훈을 찾아야 한다.
윤명오 한국화재소방학회 회장· 서울시립대 소방방재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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