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의 요체는 관세 등 무역장벽을 철폐해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것.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8일 양측 정상이 서명한 한ㆍEU FTA의 후생효과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추산으로 약 320억 달러(지난해 국내총생산의 3.84%)에 달한다지만 업종별로, 생산ㆍ소비자별로 득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와인 값 내린다
협정 발효 시점인 내년 7월1일 EU에서 수입하는 품목 1만1,261개 중 81.7%인 9,195개의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 물론 유통 단계에서 마진을 얼마나 남기냐에 따라 다르고, 관세 말고도 다른 세금이 붙기 때문에, 없어진 관세만큼 바로 소비자가격 인하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내년부터 눈에 띄게 가격이 내리게 될 대표적 품목은 포도주(와인)다. 칠레산 와인의 경우 5년간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됐지만, 유럽산 와인은 원가의 15%에 달하는 관세가 즉각 사라진다. 이에 따라 프랑스 와인, 이탈리아 와인의 소비자가격도 바로 하락할 전망. 업계에서는 평균 13%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부품(8%), 광학기계(8%), 직물의류(8~13%) 등의 관세도 협정 발효와 동시에 철폐돼 가격 인하 효과를 내년부터 실감할 수 있을 전망이다.
벤츠ㆍ랑콤ㆍ바이엘은 3년 이내 철폐
벤츠나 BMW, 랑콤, 샤넬, 바이엘 등 우리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의 가격인하를 뚜렷하게 체감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EU산 중대형(배기량 1,500cc 초과) 자동차(8%), 의약품(8%), 화장품(8%) 등에 붙는 관세는 3년에 걸쳐 철폐되기 때문. 1년마다 관세의 3분의 1이 깎이는 식이다.
수입차 업계는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개별소비세와 취ㆍ등록세를 감안해 7.4%의 인하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4,000만원짜리 수입차라면 3년에 걸쳐 가격이 300만원라양 떨어지는 셈. 소형(1,500cc 이하) 자동차(8%), 의료용 전자기기(8%) 등은 5년, 맥주(30%), 모직물(13%), X선 및 방사능기기(8%) 등은 7년에 걸쳐 철폐된다. 하지만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관세를 낮출 경우 정말로 값이 내릴지, 아니면 관세 인하분이 수입업자의 마진으로 그냥 흡수되어 버릴지는 불분명하다.
식품류는 완전 철폐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제조업의 즉시 철폐 비율이 90.7%인 반면, 농업은 42.1%에 불과하다. 돼지고기, 발효유, 레몬 등은 10년이 걸리고, 송이버섯이나 멜론은 12년, 닭고기와 오리고기 13년, 쇠고기와 우유 등은 15년이 걸린다. 쌀은 개방에서 제외됐다.
자동차 유리, 농축수산 또 피해
국내 자동차산업은 FTA 발효시 가장 수혜를 입을 산업으로 꼽힌다. 협정 발효 후 15년 동안 연평균 14억700만달러의 대EU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KIEP 등의 예측이다. 대신 EU산 자동차 수입은 연평균 2억 1,700만 달러 늘 것으로 전망됐다. 전기전자(연평균 3억 9,000만 달러), 섬유(2억 2,000만 달러) 등도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산업이다.
다른 FTA의 효과 예측에서도 그랬듯, 농축수산업은 이번에도 피해분야가 될 것이 확실하다. 수출은 소폭 증가하는데 수입이 크게 늘어 농업에서 연평균 적자가 3,100만 달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돼지고기 수입 급증에 따라 축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EU가 기술에서 앞서 있는 정밀화학, 기계, 화장품, 의약품 등 분야에서도 시장 잠식이 우려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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