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이 화려하다. ‘와호장룡’ 등으로 이름 높은 무협 여걸 양쯔충(楊紫瓊)이 등장하고, 충무로 간판배우 정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홍콩의 대표 감독 우위썬(吳宇森)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르도 전통무협. ‘검우강호’는 진용만으로도 무협 팬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한 영화다.
화려한 무술이 일단 시선을 낚아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무림 절대 고수가 되기 위해 고대승 라마의 시신을 손에 넣으려는 비밀조직 ‘흑석파’가 한 집안을 결딴 내는 장면은 정지화면만으로도 고농축된 서스펜스를 불러낸다.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까지 곁들이며 우위썬의 화면 세공술이 더욱 섬세해졌음을 알린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도 눈은 황홀하다. 칼에 부딪힌 다른 칼이 휘어지며 사람의 살을 파고들거나, 춤사위를 연상케 하는 무술 동작이 시선을 붙든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무술 장면들이 상영시간 114분 내내 동공을 자극한다. 세월을 무색케 하는 양쯔충의 활기찬 몸동작도 남다른 볼거리다. 25년 전 그의 이름을 한국에 알린 ‘예스마담’(1985)의 액션과 비교해도 힘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빼어나지 않다. 흑석파 일원으로 라마의 시신을 위해서라면 도륙을 마다 않던 미우(양쯔충)가 평범한 새 삶을 선택하고 성실하고도 착한 남자 지앙(정우성)과 부부의 연을 맺는 과정까지 우위썬의 화법은 제법 술술 풀린다. 라마의 시신을 찾는 흑석파 두목의 계략으로 두 사람의 평화로운 신혼생활이 벼랑 끝에 몰리게 되는 중후반부도 납득할만한 전개다. 하지만 영화는 뒤로 갈수록 스텝이 꼬인 복싱선수를 닮아간다. 뒤늦게 밝혀지는 지앙의 과거와, 지앙과 미우의 악연은 몰입을 방해한다.
미우와 지앙이 한방수술로 얼굴을 바꾸는 장면은 흥미롭다. 우위썬의 할리우드 출세작 ‘페이스오프’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미우와 지앙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는 사연은 부부 킬러의 전쟁과도 같은 싸움을 다룬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와 포개진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양쯔충과 30대 정우성이 로맨스를 펼치고 결혼까지 한다는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도 많을 듯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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