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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북의 더 나은 후계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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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북의 더 나은 후계체제는

입력
2010.10.0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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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중국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이 속도를 내던 1990년대 초 북한에도 실용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반 은퇴 상태에 들어가고 사실상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단독 통치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사회주의시장 붕괴와 북한 내부 모순 등 안팎의 시련으로 북한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자 그때까지는 금기였던 시장경제적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경직된 계획경제와 대중동원 방식을 토대로 한 김정일의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에 정면 도전이기도 했다.

1990년대 단명했던 실용개혁

중국식 개혁개방을 선호했던 이들의 노선에 김 주석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식량난 등 일련의 심각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선 복귀를 꾀하면서 실용주의 개혁 노선에도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에 합의하는 등 위기 타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만큼 개혁개방 필요성도 백안시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당시 식량배급체제 붕괴를 놓고 김정일을 크게 질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1994년 7월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실용주의 개혁 노선은 자취를 감췄다. 김정일이 집단주의와 대중동원 강화를 통한 체제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용주의 개혁은 철저히 배격되고, 관련 인사들은 숙청됐다. 실용주의 개혁세력의 중심이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지만, 김 주석이 조금 더 살았더라면 오늘의 북한은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정은 후계체제 공식화로 북한의 3대 세습이 현실이 됐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 변혁기에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집단주의와 수령체제의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김정일 노선의 필연적 귀결이다.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김일성-김정일 가계 우상화를 체제 유지의 축으로 삼아온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직계가 아닌 인물이 후계자가 되기는 어렵다. 3대 권력세습에 대한 가치 판단을 떠나 북한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나아갈 방향이다. 스위스 유학 경험 등 서구사회의 문화를 경험한 김정은에 대해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경험이 일천한 20대 후반의 김정은에게 개혁개방 등 변화를 바라기는 어렵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기존 노선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에서 후계체제의 안정화를 꾀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더욱이 그의 후계체제 구축 작업은 막 시작했을 뿐이고 아버지가 여전히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시 관심은 김 위원장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거의 유일한 희망은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의 틀을 잡아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철저한 폐쇄노선을 고집해온 그이지만 이제 북한 자체의 힘만으로 경제난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법도 하다. 8월 말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높게 평가한 바탕에는 그런 인식이 깔려 있었을 수도 있다.

개방에 관심 갖도록 유도해야

최근 열린 당 대표자회에서는 기대와는 달리 개혁개방 등 새로운 정책노선을 시사하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개혁개방 등을 둘러싼 내부 이견이 조정되지 않은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어린 아들에게 보다 안정된 체제를 물려주기 위해 다양한 구상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핵무기에 의존하고 폐쇄적인 자력갱생노선에 의지하기보다는 대외협력과 보다 개방적 방향에서 대안을 찾도록 주변 관련국들이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후계체제를 서두르는 것으로 미뤄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후계체제 구축 과정을 지켜보자며 느긋하게 기다리다 뒤늦게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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