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말. 호주 전역에서 단파무선통신이 교란돼 국가간 원거리통신과 아마추어무선통신이 끊어졌다. 스웨덴 남부도시 말뫼는 송전설비 고장으로 1시간 동안 정전됐다. 일본 환경관측위성 미도리2호는 교신이 끊겼고, 미국 화성탐사위성 오디세이는 일부 장비가 손상됐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지구관측위성 아리랑1호의 고도가 하루에 33m씩 떨어졌다. 평소보다 6배나 빠른 속도였다. 경기 오산 미공군기지에서는 단파무선통신이 일부 두절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학자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태양을 지목한다. 그때가 10여년 주기로 돌아오는 ‘태양활동극대기’였다는 것. 다음 극대기는 2013년이다. 대비가 필요하다.
10년만에 돌아올 태양활동극대기
전문가들은 2013년 태양활동극대기 때 위성을 이용한 원거리 중계방송이나 휴대전화 통신에 일부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본다. 지역에 따라 휴대전화 중계기와 단말기 간 전파 이동이 방해를 받아 간헐적으로 휴대전화 통화가 잘 되지 않을 거란 예상이다. 김연한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그룹장은 “방송이나 전화 통신 장애는 대부분 1시간을 넘지 않을 것”이라며 “군이나 인공위성, 전력설비 같은 국가기간시설의 피해를 막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태양활동극대기에는 태양 표면에서 하루에 1, 2번씩 대규모 폭발(플레어)이 일어난다. 며칠에 한번씩 일어나는 평소보다 빈도도 잦고 규모도 커진다. 태양폭발이 일어나면 태양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보통 때보다 100∼1,000배 증가한다. 전자와 양성자 등 고에너지 입자들이 초당 수백부터 수천km 속도로 2, 3일만에 지구로 날아들어온다.
지구는 고에너지 입자들로 구성된 고리 모양의 밴앨런방사선대와 거대한 자기력선에 둘러싸여 있다. 평소엔 이들이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하지만 태양활동극대기엔 워낙 에너지가 높고 많은 입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때문에 밴앨런방사선대나 자기력선이 감당해내지 못한다. 결국 지구 자기장이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 그룹장은 “지구 전리층(고도 50km 이상, 전자와 이온이 모여 있는 영역)의 전자밀도가 변하면 무선통신과 GPS 신호에 장애가 생길 수 있고, 지자기변화로 유도전류가 생기면 전력시스템이나 해저케이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하면 대기밀도까지 변화시켜 인공위성 궤도에 오류가 생기거나 위성 본체가 물리적으로 손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김 그룹장은 덧붙였다.
HDTV 10배 해상도로 태양 촬영
태양활동극대기의 피해를 줄이려면 사전에 태양의 움직임을 세밀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태양관측위성은 보통 위성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위성은 빛을 모으는 장치를 갖고 우주로 올라가지만 태양관측위성에는 빛을 줄여주는 필터가 장착된다.
현재 우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태양관측위성은 SDO와 스테레오(STEREO), 히노데(HINODE) 등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2006년 발사한 STEREO는 쌍둥이 위성. 하나는 지구보다 빨리, 다른 하나는 늦게 돌면서 태양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촬영해 입체적으로 관측한다. 일본이 2006년 쏘아 올린 HINODE와 NASA가 올 2월 발사한 SDO는 가장 해상도가 높은 태양관측위성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특히 SDO에 많은 기대를 건다. 촬영 영역이 HINODE보다 넓고 여러 파장의 극자외선을 내기 때문에 다양한 자기장과 표면 영상을 얻어낼 수 있어서다. 일진(日震)이라 불리는 태양의 진동현상을 관측하면 내부구조까지 유추도 가능하다. SDO는 HDTV의 10배 정도 되는 초고해상도 영상을 하루에 약 1.5테라바이트(1TB=1조바이트)씩 쏟아낸다. 최소 수명이 5년3개월이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범용 네트워크만으론 전송 어림 없다. 이에 NASA는 미국과 독일, 벨기에에 별도로 SDO 데이터센터를 만들어 수개월치씩 데이터를 모아 여러 과학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태양 관측 데이터 아시아 허브로
우리나라에도 SDO 데이터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13년 태양활동극대기를 대비해 지난 7월 NASA와 센터 설립을 포함한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SDO 데이터센터가 국내에 설립되면 일본과 중국도 실시간으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종욱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연구본부장은 “태양우주환경 분야에서 NASA와의 공식적인 공동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협약에는 NASA가 2012년 쏘아 올릴 예정인 밴앨런방사선대관측위성(RBSP)의 정보수신시스템을 국내에 설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NASA가 주도하는 국제협력프로그램(ILWS)에 우리나라가 가입하는 절차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우주환경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ILWS에는 유럽우주기구(ESA)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 선진국 3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국내에선 교육과학기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연구소, 환경부 기상청을 중심으로 2013년 태양활동극대기를 대비해 우주환경 예·경보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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