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은 생애 이루지 못했던 숙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화학 공업 진출이었다. 이 숙원은 후대의 몫이 됐고 두산의 후대들은 보란 듯이 선친의 숙원을 이뤄냈다.
두산은 기업 모태인 ‘박승직상점’ 설립 100주년이 됐던 1995년 새로운 100년을 대비한 대대적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핵심은 중공업 진출이었다. 단계적으로 중공업 진출 방향을 모색하던 두산은 2001년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두산중공업으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진출했다. 2005년에는 굴삭기 등 건설기계 제조업체인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해 두산인프라코어로 명칭을 바꿨고, 2007년에는 세계 1위의 소형 건설중장비 제조업체인 ‘밥캣’을 인수하는 초대형 인수ㆍ합병(M&A)을 단행했다.
이후 10년이 채 안 된 현재 두산의 모습은 ‘괄목상대’ 그 자체다. 두산중공업은 해수담수화 설비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전 세계의 굴삭기 업체들이 모여들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고객 만족도 부문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두산을 대표하던 옛 얼굴 OB맥주와 소주‘처음처럼’은 과감하게 매각됐다. 두산은 주류업체, 소비재 업체에서 완벽하게 중공업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때문에 두산은 재계나 학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혁신 사례로 자주 지목되고 있다.
박 전 회장의‘인재제일’ 철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두산은 2008년에 중앙대를 인수해 교육사업에 진출했다. 박용만 (주)두산 회장은 그룹 오너로서는 전례가 드물게 취업설명회에 직접 참여하면서 인재 욕심을 내고 있다. 그는 “1등이길 원하면 삼성으로 가라. 하지만 함께 1등을 만들고 싶다면 두산으로 오라”고 강조해 대학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사람이 미래다’를 주제로 하는 두산의 기업 광고도 두산에 대한 취업선호도율과 인지도를 각각 6%포인트와 5%포인트 끌어올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의 오늘은 박 전 회장이 보더라도 만족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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