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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 (2) 화마(火魔)는 취약 계층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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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와의 전쟁] (2) 화마(火魔)는 취약 계층을 노린다

입력
2010.10.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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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부터 한 살 위 오빠와 보육원에서 자란 P모(26ㆍ여)씨. 부모와 일가 친척이 누군 지도 모른 채 살아온 P씨 남매는 고교 졸업 후 열심히 일해 10년만인 지난해 12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9만원짜리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가재도구는 은행에서 소액 대출을 받아 구비했다. 그러나 꿈 같던 내 집 생활도 잠시, 올해 5월 어느 날 새벽 P씨 남매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졌다. 살던 서울 강동구 반지하 단칸방의 화장실내 세탁기 주변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난 것이다. 화마는 순식간에 P씨 남매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집 전체가 시커먼 숯 더미가 돼 가전제품 등 세간이 모두 못 쓰게 됐다. 주민들은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천만다행”이라고 달랬지만 남매는 전부인 단칸방이 잿더미로 변한 절망으로 한동안 주저 앉아 오열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미처 보험도 들지 않아 건물주에게 화재 피해 보상금 800만원을 보상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런 남매의 딱한 사정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줄기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강동소방서 측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P씨 남매가 저소득층 피해복구 재활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 주었다. 그 덕에 P씨 남매는 서울사회복지협의회의 심의를 거쳐 600만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는 저소득층 화재피해 가정으로 선정됐다. 수 십 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나서 깨진 유리창과 집안 곳곳에 묻어있는 화재 잔해를 말끔히 치워주었다. 이를 통해 P씨 남매는 다시 희망을 갖고 보금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매의 어려운 사정을 조사해 관계기관에 알린 강동소방서의 김종석(49) 소방위는 “복지협의회 측에서 주택수리복구 지원 외에 냉장고와 미니장롱을 살 수 있도록 추가지원까지 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며 “소방관 생활 23년간 가장 의미있는 경험으로 기억된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저소득층은 주로 맞벌이를 해 아이들만 집에 있는 경우도 많고, 형편이 어려워 화재에 대한 주의와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화재 예방 및 피해 보상 대책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취약계층에게 화재사고는 치유하기 힘들 치명적인 상처를 안긴다.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단독주택은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많이 사는 중대형 아파트와 달리 스프링클러나 감지기 같은 방화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또한 다가구나 다세대, 연립주택 등이 몰려 있는 빈민가는 화재가 났을 경우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힘들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올해 3월 동대문구에 사는 시각장애인 L씨(48) 가족도 벽돌을 쌓아 만든 슬레이트 단층집이 불에 전소되는 화를 당했다. 일용직 근로자인 부인과 중ㆍ고생인 세 자녀는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L씨 아들은 잿더미가 된 집터를 바라보며 “내 공책과 텔레비전은?”이라며 울먹였지만 이들에게 남은 것은 검은 잿더미뿐이었다.

화재에 가장 취약한 곳은 판자로 잇댄 허술한 집들이 몰려있는 ‘쪽방촌’이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고를 지나 언덕쪽으로 올라가면 성인 한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거미줄 같은 골목에 판잣집들이 빼곡히 있다. 일명 해방촌이다. 부엌이 따로 없어 좁은 방 안에 취사도구와 전기장판이 어지럽게 널려있지만 방재도구라고는 휴대용 비상조명등이 전부다. 해방촌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54)씨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화재 대비할 여유가 어딨어”라고 반문하며 “여기는 장애인이나 노인 같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 불이 나면 모두 죽는다는 각오로 산다”고 말했다. 정모(63ㆍ여)씨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난로를 써야 하는데 불 나지 않고 올 겨울을 잘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탄식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쪽방촌은 소화기 설치가 의무인 법정 대상은 아니지만 화재 취약지역이어서 소화기와 마스크, 경보기 등을 무료 설치해주고 있으니 신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재래시장 3곳 중 2곳 화재취약… 보험가입률 18% 불과

전국의 재래시장 세 곳 중 두 곳이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박민식(한나라당) 의원이 5일 중소기업청에서 받아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 전국 전통재래시장 1,550개 중 60%(933개)가 화재안전 불량 등급을 받았다. 화재취약 재래시장은 경북(146개) 부산(115개) 서울(95개) 순으로 많았다.

화재로 인해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47억원 규모의 재산 피해와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통시장 화재 발생 건수는 2005년 47건, 2006년 34건, 2007년 66건, 2008년 67건, 2009년 64건 등이었다.

반면 화재보험 가입은 전체 재래시장이 평균 17.9%에 불과했다. 재래시장 상권 크기별로는 전국상권시장 57.1%, 광역상권시장 33.8%, 지역상권시장 24.1%, 근린상권시장 13.4%만 보험에 가입했다.

소방방재청은 "9월 특별소방점검에서 전통시장 소방출동로 확보를 위한 현장 캠페인과 함께 화재 취약 상점에 단독경보형감지기를 달아줬다"고 밝혔다.

박석원기자

■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화재감지기 달아주기로 화재사망자 획기적 감소"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

범국민 캠페인 ‘화재와의 전쟁’을 진두 지휘하는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민관 10개 단체가 추진하는 ‘저소득층 화재 취약계층 단독경보형감지기 달아주기 모금운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 청장은 화재감지기 달아주기 범국민 캠페인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근거로 ‘비용(개당 1만원) 대비 놀라운 효과’와 ‘실질적인 필요성’ 그리고 ‘국민적 참여 의식 고취’를 든다. 그간 저소득 계층이 화마로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내 화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이 밀집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1만원 하는 단독경보형감지기만 설치하면 이런 사망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용 대비 엄청난 효과를 보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캠페인은 적은 비용으로 생명을 지키는 생명존중 운동이자, 진정한 친서민 정책입니다. 성공을 확신합니다.”

박 청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후 소방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기존의 소방정책이 ‘불을 잘 끄는 소방’이었던 것을 근본적으로‘불이 나지 않게 예방하는 소방’으로 전환한 것. 그래서 올해 초부터 화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그 효과는 가시화하고 있다. 화재와의 전쟁 선포한 이후 9월말 현재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300명에서 180명으로 무려 40%나 줄었다.

하지만 사망자 감소율을 40% 이상 높이는 데는 벽에 부딪쳤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박 청장이 내놓은 비책이 단독경보형감지기 달아주기 범국민 운동이다.

“국내 화재의 60% 이상이 오후 6시부터 익일 새벽 6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화재의 67%가 저소득층 거주 단독주택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착안한 게 단독경보형감지기 달아주기 운동입니다. 화재감지기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사망자를 5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박 청장은 화재경보기 달아주기 운동을 개인 기부 캠페인에서 시작해,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한 지방 마을에 감지기를 달아주는 ‘1사1촌 결연’형태로 확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1차로 57만 화재 취약계층의 가정을 화재가 없는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목표를 세웠다.

박 청장은 “우리 위대한 국민과 기업, 단체는 화재로부터 안전한 내고향 만들기 운동을 분명히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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