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캐다가 시냇가에 쉬노니/ 시냇물은 맑고도 또 잔잔하다/ 새로운 등나무는 비 뒤에 깨끗하고/ 오랜 돌은 구름 속에 고와라/ 새로 나온 잎은 한창 자라 귀엽고/ 늘어진 꽃은 시들지 않아 기쁘다/ 푸른 바위는 수놓은 병풍에 맞먹고/ 파란 이끼는 비단자리 대신한다/ 사람 삶에서 무엇을 또 바라랴/ 턱을 고이고 앉아 돌아가기 잊었는데/ 쓸쓸하여라, 산의 해가 저물어/ 저 수풀 끝에 저녁 연기가 인다’(초의선사 ‘계행’)
추사 김정희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초의선사(1786~1866), 지눌 선사상의 전파자인 진각국사(1178~1234) 등 역대 고승들의 선시(禪詩)가 미국에서 성악곡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른다.
김원중(51)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는 크리스토퍼 메릴 미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원장과 함께 영역한 한국 선시집 (2005)에 실린 작품 중 5수가 성악곡으로 만들어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디애나캠퍼스(IUP)에서 13일 공연된다고 밝혔다.
은 시인 고 김달진이 편역한 (1985)를 영역한 시집으로 국내 주요 선시 100여편이 실려있다. 김원중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신경림, 김지하, 황지우, 나희덕 등 국내 주요 시인들의 시집 9권을 영역한 한국시 전문 영역자다.
성악곡으로 만들어진 선시들은 조선 중기의 고승 허백명조선사의 ‘호접몽’(胡蝶夢ㆍThe dream of butterfly), 진각선사의 ‘어부사’(漁夫詞ㆍA fisherman’s song), 취미수초선사(1590~1668)의 ‘산거’(山居ㆍMountain life), 초의선사의 ‘계행’(谿行ㆍOn the bank of a stream by Taedun Temple), 부휴선사(1543~1615)의 ‘문적‘(聞笛ㆍOn hearing a pipe)이다. 하나같이 인생에 대한 무상감, 적막한 산천과 애상감, 객수(客愁) 등이 빼어나게 표현돼 있는 절창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디애나캠퍼스 작곡과 다니엘 퍼롱고 교수가 이 선시들을 성악곡으로 만들었고, 이 대학 성악과 사라 멘텔 교수(메조 소프라노)가 수잔 휘틀리 음악교육과 교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초연한다.
퍼롱고 교수는 한국의 선시들에 대해 “한국과 한국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며 음악적 영감을 준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곡이 붙여진 5편의 작품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경험을 매우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매혹적”이라고 말했다. 멘텔 교수는 “매우 아름답고 고전적이며 서정적인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품들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초연된 뒤 내년 7월 서울과 경주에서 열리는 미국음악대학학회 국제학회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김원중 교수는 “미국 엘리트층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선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선시는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세계를 동경하게 된 서구인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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