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S사는 지난해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폰 부품을 2008년 대기업 K사에 독점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K사의 요구로 모든 기술 자료를 넘겼지만 결국 제대로 된 주문을 받지 못한 것이다. S사는 K사가 신제품을 개발해 양산을 시작하기만을 1년7개월 동안 기다렸지만 K사는 S사의 기술을 다른 업체로 넘겨 생산을 맡겼다. 결국 S사는 납품도 못하고 다른 업체로의 판로도 막혀 지난해 약 1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S사는 기술보호상담센터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고 있지만 증거 입증문제와 시간, 비용이 많이 들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포장용 상자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중소기업 J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J사는 중견기업 G사의 요청으로 11개월 동안 새로운 치킨포장 박스 기술개발을 진행했다. 그러나 J사가 자체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출원을 내자 G사의 태도가 달라졌다. G사는 무리하게 단가를 낮춰달라는 요구를 했고 J사가 거절하자 기술을 약간 변경해 다른 업체에 생산을 의뢰했다. J사 역시 G사에 박스 납품을 하지 못하게 됐고 기술개발 및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 개발비 일체도 받지 못했다. J사는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해외에까지 진출했지만 기술유출 피해로 결국 문을 닫고 철수한 사례도 있다. 검사측정기를 개발하는 중소기업 H사는 최근 검사 측정기 관련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중국 칭다오에 공장까지 지었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한 중견기업의 도움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이 중견기업은 H사의 중국 진출을 도우며 빼낸 기술 자료를 바탕으로 같은 업종의 회사를 차렸다. H사는 이 사실을 알고 대응 방법을 모색했지만 탄탄한 자본력으로 칭다오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견기업이 세운 회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H사는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철수했다.
5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민식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중소기업 중 2,258곳이 산업기술 유출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한 피해액이 4조2,156억원에 달했다. 또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실이 지난 7월 중소기업청,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함께 중소기업 2,0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 중소기업의 22.1%는 수ㆍ위탁 거래 관계에서 대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핵심기술을 요구 받은 경험이 있고, 이 가운데 80%는 일부 또는 전체 기술을 제공했다고 답했다.
기술유출 피해액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피해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의 평균 피해액은 19억3,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조사한 평균 피해액(10억2,000만원)보다 87%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50억원 이상 피해를 봤다는 중소기업도 3곳이나 됐다.
박민식 의원은 “대기업 및 해외 경쟁업체의 기술 유출에 대한 중소기업의 피해가 막대하다”며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위해 기술임치제도의 확대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조속히 시행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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