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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13) 제빵왕 김탁구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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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다문화 우리문화!] <1부> (13) 제빵왕 김탁구 꿈꿔요

입력
2010.10.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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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굽고 커피 내리는 여수댁들 "열정만큼 솜씨도 달인돼야죠"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1차 발효가 끝난 뽀얀 밀가루 반죽 덩어리에서 한 움큼을 떼어내 저울에 올려놓으면 디지털 눈금은 정확히 48g이란 숫자를 만들어 낸다. "TV 프로그램 '달인' 에 나갈 거래요."매니저 김유선(45)씨는 황선희(본명 뚜이누ㆍ30)씨의 반죽 떼기를 칭찬하며 너스레를 떤다. 황씨의 꿈은 TV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 같이 되는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땅을 밟은 지 채 한 달도 안돼 좌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심한 남편은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보듬어 주지 않고, 어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도망간다며 아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 이역만리에 있는 부모와 동생들에게 돈도 부쳐 주고 싶는데 힘들게 돈벌이하는 남편에게 제대로 말하기조차 어렵다. 대한민국 다문화 아줌마의 표준 현실이다. 하지만 모진 시련을 딛고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제빵왕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를 꿈꾸는 베트남 출신의 황씨와 응우엔티구안(32)씨, 중국 출신의 훵잉화(35)씨. 전남 여수YWCA의 사회적기업인 ㈜민들레마을이 운영하는 나눔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꿈이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희망을 키우며 사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서다.

2003년 7월 하노이에서 한국에 들어온 황씨는 억척이다. 말수는 적지만 뭐 하나 맡기면 억척스럽게 일을 해 낸다. 이런 부지런함은 제빵 기술을 배우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한다. 베이커리가 문을 연 건 올 7월 15일. 4월부터 오픈 준비를 했지만 기술을 배운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솜씨는 이미 초보 수준을 넘어섰고 열정은 '달인'에 도전할 만하다. "아직 시험 볼 생각은 못 해 봤지만 기회가 된다고 자격증을 따고 싶어요."빵이나 과자를 만드는 자격증은 크게 제빵과 제과기능사로 나뉘고, 자격증 취득 후 실무 경험이 6년 이상이면 기능장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황씨에겐 쉽지 않은 길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아들을 돌봐야 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 한다. 그래도 바쁘니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나서 아들 학교 갈 채비를 해 준 뒤 자신은 9시 반까지 여수시 공화동의 베이커리로 출근해 오후 3시 반께까지 6시간 근무한다.

빵 만든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밀가루를 반죽해 1차로 30분 정도 발효시킨 뒤 단팥빵 바게트 소보로 등 빵 종류에 따라 모양을 내고서는 다시 40분 정도 2차 발효시켜야 한다. 이후 짧게는 10여 분에서 길게는 40분 정도 굽는 과정을 거쳐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탄생한다.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카스테라나 쿠키는 다른 방법을 거치는데 이 역시 하나하나 모두 배워야 한다.

김탁구를 꿈꾸는 이들이 받는 월급은 60만원. 어떻게 보면 많지 않지만 소중한 자산이다. 직장이 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며, 아이 용돈을 주고 친정 가족에게 생활비라도 보내 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아이 학용품도 사고, 저축도 하고…." 겸연쩍게 말하는 황씨는 이미 성공으로 가는 절반을 희망으로 채웠다.

바리스타 꿈꾸는 여수댁

각각 39세 남편을 둔 김자경(본명 웬티록·26) 이보영(본명 누엔티로엔·25)씨는 바리스타를 꿈꾸고 있다. 이들 역시 여느 베트남 신부처럼 커피에 익숙지 않았다. 특히 체질적으로 쓴 맛을 싫어하는 이씨에겐 커피는 더욱 생소하다.

이들이 커피와 인연을 맺은 것은 6월. YWCA의 결혼이주여성 직업능력교육 프로그램인 '징검다리'에 참가했던 이들에게 나눔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커피점 근무는 언어와 문화 차이가 큰 결혼이주여성에게 생각보다 장벽이 많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카페라테 카푸치노 캬라멜마키아토…. 한국에서 생활한 사람도 많은 종류의 커피 이름을 다 알지 못할뿐더러 이를 모두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바리스타는 커피의 종류 특징 향 등은 물론, 어떤 빵과 잘 어울리는지 등 커피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다. 이들은 7월 15일 나눔카페 오픈에 앞서 초빙 바리스타로부터 집중 교육을 받았다. 미국 유학 중 커피 공부를 틈틈이 했던 카페 매니저 채주혜(39)씨도 이들에게 커피 제조 과정을 하나하나 알려 줬다. 김씨는 "처음에 손님이 리필(refill)이 가능한지를 묻길래 뭔 말인지 몰라 당황했다"고 말했다.

두 달 넘게 일한 이들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에스프레소와 스팀밀크가 어우러진 카페라테에 하트 모양을 낼 줄 알고, 커피머신을 다루는 솜씨도 아마추어 티를 벗었다. 두 살 난 딸을 둔 이씨와 아들(4)을 키우는 김씨 모두 바쁜 일과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갖고 산다는 것이 적잖이 기쁘다. 채씨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꿈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바리스타의 경우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여수=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이주여성 취업교육, 육아부담 덜어주고 장기적 프로그램 필요"

다문화 여성은 결혼을 통해 한국 땅을 밟게 된다. 말이 안 통하고 문화도 잘 모르니 모든 게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돈벌이와 자아 성취를 위해 사회 참여를 원한다.

여성가족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2009년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96%가 취업을 희망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정부와 시민 단체들은 이들에게 취업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미흡한 게 많다. 예컨대 현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일정 기간 교육 후 몇 달간 월급을 받는 단기 코스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바리스타 제빵제과사 네일아트사처럼 장기적 일자리가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단순히 체험 수준의 프로그램으로는 취업이 쉽지 않은 만큼 전문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장기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결혼이주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 주는 것도 절실하다.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직업교육과 취업의 장애 요인은 역시 육아 문제다. 특히 한국 여성들보다 육아에 대한 정보나 경험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들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울 수 있는 공동 육아 모델이 확산돼야 한다.

새로운 직종 개발도 필요하다. YWCA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2009년 네일아트사 바리스타 천연화장품제조사 다문화강사 등을 포함한 10개 직종을 개발했다. 이런 노력이 확산돼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교재 개발 및 직업교육 방법 연구도 병행돼야 하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상담과 보수교육 등 세밀한 후속책도 뒤따라야 한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직업은 단지 생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일터에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자신감이 생긴다. 잘하는 일을 발견하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희망을 가진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은 일을 통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자신감은 곧 가정 화목과 자녀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시민 단체 및 기업의 협력이 함께 모아짐으로써 취업 확대 노력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길 기대한다.

한국YWCA연합회 유성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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