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이틀째인 5일 국회 상임위 회의실. 여전히 곳곳에서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이날 아침 “국감이 정책 중심 질의를 바탕으로 잘 출발했다”고 평가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구태의연한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먼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문화재청 감사에서 고성이 들렸다.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윤봉길의사 연행 사진을 들고 나와 이건무 문화재청장에게 질의하던 도중 “이 무식한 사람들아”라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국감장 분위기가 썰렁해졌지만 김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청장에게 “답변할 자격이 없어요”라고 윽박질렀다. 김 의원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앉아서 답변할 자격도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발언대로 자리를 옮겨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연행 사진이 2008년 국가보물 지정에서 해제됐다”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재지정할 것을 촉구하면서 질의를 마쳤다.
일부 중진 정치인들의 불성실한 태도도 함량 미달의 국감을 부추기고 있다. 민주당 10ㆍ3 전대대회에 출마해 지도부에 입성한 정동영 정세균 의원 등은 국감 첫날 해당 상임위에 불참하거나 잠시 참석했을 뿐이다. 정세균 의원이 이틀째 국방위 감사장에 나타나 ‘러시아 보고서’를 거론하면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의혹을 거듭 제기하자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북한 소행이 아닌 것처럼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여야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고 가는 바람에 국방위는 정회 소동을 빚었다.
국감의 목적은 명확하다. 국민을 대표해 국가기관의 정책 및 예산 집행 내역을 꼼꼼히 따져보고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윽박지르기와 호통, 여야 의원들의 말싸움, 불성실한 태도 등으로는 피감기관을 견제할 수 없다. 목소리 높이기에 앞서 실력을 쌓아야 공무원들이 무서워한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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