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립발레단의 ‘라이몬다’ 커튼콜을 보던 관객들은 의아했다. 악역 압데라흐만 역의 장운규(33)씨가 커튼이 닫힌 뒤에도 단독으로 객석을 향해 한 번 더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대개 주역들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관객들은 ‘저 사람은 왜 또 인사를 했지?’ 하는 의문을 가진 채 돌아갔다.
그게 끝이었다. 10년 동안 진득하게 국립발레단을 지키고 있던 수석무용수 장운규씨의 마지막 무대는 소박했다. 가까운 지인을 제외한 일반 단원들은 ‘라이몬다’가 시작하던 지난달 25일이 돼서야 그의 은퇴 소식을 들었다. 불과 한 달 전 그는 한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일절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평소 차분하고 진중한 그다운 모습이었다.
장씨는 2001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입단 전 선화예고 재학 때 영국 런던스튜디오센터의 장학생으로 유학을 마쳤고, 2000년에는 세계 최고(最古) 발레 콩쿠르인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거머쥐는 등(바르나에서 입상한 두 번째 한국인이다) 국내외로 실력을 인정받는 무용수였다. 입단 초부터 그가 ‘카르멘’의 호세,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 왕자 등 주역을 맡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춤을 췄고, 지금은 국립발레단 무대감독으로 있는 박창모씨는 그를 “비운의 무용수”라고 불렀다. 10여년 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역할이 줄어들었고, 장씨 자신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 발레단의 매년 연말 고정 레퍼토리인 ‘호두까기 인형’에 서너 번밖에 출연하지 못한 것만 봐도 그의 잦은 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박씨는 “운규 형은 무용수들이 인정하는 무용수, 안무가가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 캐릭터를 창조할 정도로 늘 고민하는 무용수였다”고 말했다. “공식 연습시간인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밤 10시까지 연습실에 남아 후배들과 함께 춤을 췄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공연 날 무대 뒤에서 장씨는 끝내 참던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70여명의 단원들은 장씨의 사진을 붙이고 각자 글을 쓴 커다란 종이편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항상 여자 무용수를 들어올려주던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헹가래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단원들 한 명 한 명을 끌어안는 그의 눈에는 소리없이 눈물이 차 올랐다.
인터뷰 요청에 장씨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 그 때 할게요.” 은퇴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복잡하다. 정리가 덜 돼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현재 그는 세종대 공연예술대학원 무용학과에 재학 중이다. “놀 거예요. 10년 동안 단 한 번밖에 여행을 못했거든요. 지금(4일 오후 3시) 사표 내러 갑니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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