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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스몰 자이언트, 빅 자이언트

입력
2010.10.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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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면 테러와 전쟁 등 불안한 안보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중동의 화약고'로 불린다. 적대적인 이웃들로 둘러싸인 인구 710만 명의 작은 나라로, 석유 등 자원이 전무하고 삼성 LG와 같은 큰 기업도 없다 보니 경제력이 약하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나스닥에 240여개 기업을 상장시키고 세계 벤처펀드의 31%를 점유한 하이테크 강국이다.

기업가 정신 북돋우는 이스라엘

세계에서 가장 쉽게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창업 천국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이 창업으로 연결되도록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덕분이다. 1990년대 초 2억달러로 출범한 '요즈마 펀드'가 현재 30억달러의 기금으로 수백 개의 신생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창업자금을 쉽게 모을 수 있고, 한 번 실패를 해도 재기가 가능하다. 미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실패 경험이 있는 창업자가 성공할 확률이 처음 창업한 사람보다 높다. 그래서 이스라엘 투자자들은 건설적인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한다. 젊은이들이 창업의 위험을 감수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에 나서는 이유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는 음성 메일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만든 콤버스테크놀로지와 USB 메모리를 개발한 M-시스템스 등 기술력을 갖춘, 작지만 강한 스몰 자이언트(Small Giant)가 넘쳐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회의'에서 "한국에서도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 일본 장수기업의 장점을 접목한 스몰 자이언트가 대거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을 전제로 한 말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창업 준비생들에게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등을 소개하며 "시대에 관계없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업가 정신의 부재로 창업이 활발하지 않고, 설령 회사를 만들어도 스몰 자이언트로 성장하기 어려운 국내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빅 자이언트(Big Giant)의 천국이요, 재벌 공화국이다. 최근 수십 년 간 국가 전략과 자원이 오로지 수출 대기업의 성장에 집중된 탓이다. 그 결과 재벌의 과실 독점과 양극화 확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렇다고 빅 자이언트가 활발히 배출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제조ㆍ서비스 분야 중소기업이 시장지배력이 공고한 대기업과 경쟁해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30년간 국내에서 탄생한 중견그룹은 STX와 웅진 뿐이다. STX는 2001년 출범해 10년 만에 재계 서열 12위로 컸지만, 외부 차입을 통한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 전략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여전한 미완의 그룹이다. 자수성가한 그룹사는 웅진이 유일한 셈이다. 웅진이 1980년 자본금 7,000만원의 출판사(웅진씽크빅)로 시작해 14개 계열사를 가진 중견그룹으로 성장한 데는 학습지 '웅진아이큐'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은행에서 1억~2억원을 빌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영세 출판사가 학습지의 성공으로 단번에 160억원을 만들었고, 이 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웅진 또한 한국 특유의 '사교육 열풍'이 빚은 이례적인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고용 문제 최상의 해법은 창업

중소 벤처가 스몰 자이언트나 중견그룹으로 크지 못하는 이유는 대기업의 승자독식 구조가 강고한 데다 한 번 실패하면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창업 기반이 허약한 탓이다. 시장의 권력이 된 지 오래인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공정한 거래 규칙을 만들고 엄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지금도 정부의 부당행위 제재 권한은 막강하다. 자본에 휘둘려 적당히 눈감아 주는 관행에 익숙하다 보니 칼이 무뎌졌을 뿐이다.

창업은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이민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인구가 9배나 늘었지만, 젊은이들의 활발한 창업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다. 고용과 투자를 늘리라고 대기업을 닦달할 게 아니라, 스몰 자이언트가 나올 수 있도록 창업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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