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일 서울 시흥동 에쓰오일 백산주유소. 깔끔한 스타일의 빨간색 옷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직원 10여명이 밝게 웃으며 큰 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허리를 90도로 숙여 손님을 맞는다. 잠시 후 차가 멈추자 이들은 무릎 꿇는 자세로 앉더니 주문을 받는다. 바로 옆에서는 자동 세차기를 빠져 나온 차가 나온다. 손님이 차에서 내리자 주유소 직원이 문틈 등 차 안 곳곳을 닦는다. 주유소를 빠져나가는 차 꽁무니를 보고 직원들이 또 한 번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2. 같은 날 서울 사당동 현대오일뱅크 사당셀프주유소. 줄무늬 셔츠를 입은 여직원이 운전자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고 있다. 이들은 주유소 내 커피 전문점 '샌드앤푸드'의 직원. 오일뱅크는 7월 업계에서 처음으로 커피 회사와 손잡고 주유소 내 매장을 열었다. 샌드앤푸드 관계자는 "차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고객 성향에 맞춰 직원들이 직접 나와 주문을 받고 배달한다"며 "때론 고객에게 주유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1인2역을 한다"고 설명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세운 주유소들의 서비스 경쟁이 뜨겁다. 주유소 사이의 가격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다른 주유소보다 앞선 서비스로 가격 경쟁을 돌파하겠다는 것. 그 중 '서비스 1등 주유소'로 소문난 주유소 2곳을 찾았다.
백산주유소 문성필 이사는 성공 비결을 묻자 "한 푼 더 벌겠다는 가격 경쟁을 잊고 오직 고객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주변 주유소와 10원, 20원 싸게 하려고 눈치 싸움하느니 손님들이 기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궁리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며 "서비스에 감동 받은 손님들이 또 다시 주유소를 찾는 순간 가격 경쟁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주유소 경영 15년째인 문 이사는 "필드(주유 공간을 일컫는 말)에서 직원들이 의자에 앉아 농담을 주고 받다가 차가 들어오면 허겁지겁 주문 받아 기름을 넣을 때는 나도 얼굴이 찡그려졌다"며 "확 바꾸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2006년 일본 MK 택시의 철저한 서비스 프로그램을 직접 보고 이를 주유소에 적용해 보기로 맘 먹었다고 한다.
자신을 '왕'처럼 모시는 서비스에 고객들은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5년 넘게 백산주유소만 찾는다는 주부 최혜련(39)씨는 "주변 주유소보다 리터 당 100원 이상 비싸지만 서비스가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기에 아깝지 않다"며 "차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주고 손님 차를 자기 차처럼 아껴준다"며 웃었다. 사당셀프주유소에서 만난 직장인 차모(45)씨는 "차에서 내려 주문하는 게 귀찮았는데 직원이 직접 와서 주문 받고 배달해 주니 너무 편하다"며 "음식 값도 다른 매장보다 많이 싸서 꼭 기름을 안 넣어도 여기서 아침을 해결하곤 한다"고 말했다.
매출 역시 쏠쏠하다. 문 이사는 "서비스를 바꾼 후 1년 만에 매출은 2배로 늘었고 지금도 리터 당 100원 이상 싼 인근 주유소들이 하루 평균 200리터들이 15~30 드럼을 파는 데 비해 우리는 40~50 드럼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주유소의 성공은 본사 마케팅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에쓰오일은 다른 주유소 운영자들에게 백산주유소의 서비스 사례를 적극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권하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5월 경기 평택에 주유소를 연 안소연(38) 사장은 "처음에는 특이하다고 할 뿐 반응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왕 대접 받는 느낌이어서 좋다며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며 "가격 경쟁만 하던 주변 주유소들도 필드에서 의자 치우고 손님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게 유행이 될 정도"라고 전했다.
김태수 오일뱅크 마케팅팀 차장은 "손님들이 기름 넣으러 왔다가 샌드위치를 사고 커피 사러 왔다 기름을 넣는 등 두 회사 모두 이익을 보고 있다"며 "다른 주유소에도 커피 전문점을 입점하는 동시에 주유소 안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다른 마케팅 전략도 적극 펴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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