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2가 네거리의 보신각종은 해가 바뀌는 재야에 33번을 쳐 새해를 알리는 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 종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민의 성금으로 만든 새로운 종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옛 보신각종은 높이 3.18m에 무게는 19.66톤의 큰 종으로 통일신라의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에 버금가며 1963년 보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종은 6.25전쟁으로 피해를 입어 1985년 영구보존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되고 있다.
보신각은 조선시대에는 종각(鐘閣) 또는 종루(鐘樓)라고 불렀다. 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지금의 서울로 옮기고 1395년 지금의 종로 2가 네거리에 해당되는 운종가(雲從街)에 종각을 세우고 종을 메달아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세종 때 이 종각을 2층 누각으로 개축한 일이 있지만 임진왜란으로 종과 함께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 후 다시 도성으로 돌아와 종각을 재건하고 불타 없어진 종 대신 남대문 옆에 있던 종을 옮겨 달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보신각이란 이름은 1895년 고종황제가 직접 이름을 내려 이때부터 비로소 보신각종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런데 이 보신각종의 사연도 만만치 않은 내력을 가지고 있다. 종의 몸에 새겨놓은 명문을 보면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만든 이유가 없어 수수께끼이다. 지금까지 연구를 종합하면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면서 만든 대종으로 원각사가 연산군 10년(1504)에 폐사되면서 종도 제 구실을 못하고 방치되고 있었다. 이 후 중종 37년(1536) 김안로의 상소로 이 종은 다시 남대문 옆으로 옮겼다가 앞서 말한 바 같이 임진왜란 후 지금의 위치에 마련된 보신각에 옮겼다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주장은 광해군 11년(1619)에 지금의 종로 보신각으로 옮겨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468년에 만들어졌고 임진왜란 후 현재의 보신각에 걸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신각종은 2010년 현재 522년의 나이를 먹었지만 그간 전쟁과 화재 등 피해를 입어 그 기능을 다하고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의 보신각은 기존의 보신각을 헐고 1979년에 건립한 것이다. 그런데 종로구간 지하철 공사 때 지하 4~5m 아래에서 원래의 종각 터가 발견되었다. 당시 거대한 초석 11개와 기단에 사용되었던 장대석 몇 점도 함께 출토되어 현재 경복궁내 국립민속박물관 뜰에 옮겨 놓았다. 이 초석 하나의 무게가 5톤에 달해 원래 2층 누각 건물의 종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태조 때의 종각이 세종 때 종루로 개축 될 시기의 지표면은 지금보다 4~5m 아래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보신각 건너 제일은행 서편의 청진 제 12-16지구 재개발구역을 발굴조사하고 있는데 지하 4~5m에서 조선전기의 건물터가 발굴되고 있다.
앞으로 4대문 안 재개발의 경우 반드시 사전 발굴조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야만 잊어버린 조선 도성(都城)의 역사를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