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긴 벌써 자기 틀이 있는 거야. 자꾸 끼워 맞추려 그러는데, 나는 거기 절대 안 들어갈 거야.”
말로 짠 그물에 좀체 걸려들지 않았다. 어어부(漁魚父) 프로젝트 밴드. 지난 세기의 끄트머리 ‘아방팝(Avant-pop)’ 혹은 ‘쉬르레알 뽕짝’이라 지칭된 독특한 음악으로 한국 인디신을 열어젖힌 두 사람(장영규, 백현진)은, 여전히 섣부른 카테고리로 그러잡을 수 없는 ‘어어부식 하이퍼리얼리티’의 장(場) 속에 있었다. 이들이 10년 만에 내 놓는 네 번째 정규 앨범, 그리고 앨범의 쇼케이스 형식으로 13~14일 서울 LIG아트홀에서 여는 공연의 제목은 ‘탐정명(名) 나그네의 기록’이다.
“앨범 모티프? 글쎄. 둘이서 작업은 좀 해야겠고, 되도록 조용한 데서 하고 싶고, 근데 중국 연변에 계신 역사학자 한 분이 ‘여기 조용하니까 오라’고 해서 갔어요. 로동촌이라는 곳인데 참 조용해. 로동촌 생산대장님댁에서 밥을 자주 얻어먹었지. 근데 그 댁에서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르더라고요.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지. 근데 또 어쩌다 보니 명탐정이란 단어가 떠올랐어. 그렇게 탐정명 나그네, 이렇게 6음절이 일단 완성되고…”
“어어부의 음악은 어어부의 사운드”라는 난감한 회귀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던진 질문에, 이상의 시를 연상케 하는 그들만의 자동기술법 혹은 다다이즘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거의 문답무용의 인터뷰.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왜 보느냐는 인터뷰이와 마주앉은 것이다. 그래도 이야기는 유쾌하게 이어졌다. 산만하게 줄기를 일탈해가며 이뤄진 대화의 가닥을 간신히 잡아 모으면, 4집 앨범의 콘셉트는 이렇다.
“일거리가 줄어들어 우울해진 어느 탐정의 1년치 기록을 우연히 주웠어요. 일기도 있고 낙서도 있겠지. 그 중에 무작위로 뽑은 한 장의 메모가 하나의 곡이 되는 거에요. 예를 들면, 탐정 나그네가 대리운전을 해. 새벽 4시에 7번째 손님으로 엄청 예쁜, 마세라티를 모는 여자가 걸려. 태우고 도곡동으로 달리는데, 지도 남잔데 별 생각 다 들겠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강간을 할 인격도 못 되고. 그냥 평소보다 더 빨리 달려버려. 그 여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갑자기 평소 ○같아 보이던 풍경이 무지하게 멋져 보이는 거야! 이해되죠? 안 돼?”
앨범에 수록될 16곡의 음악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앨범에 담긴 곡 전체가 덩어리로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셈. 우발적 상황과 사건들이 기록된 메모를 모아 탐정 나그네라는 가공의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데, 논리보다 직관이 번득이는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실험 색채가 물씬 풍긴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찰나적으로 포착한 즉물적인 가사와 위악으로까지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한 음률. 어어부 밴드는 그러나 “날생선 같다는 말도 듣는데, 우리는 음악을 상당히 오래 다듬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멤버 둘은 각각 영화판과 미술판에서 일한다. 장영규씨는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달콤한 인생’ 등 10여편의 영화 음악을 만들었고, 백현진씨는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로 뽑혔던 현대미술 작가다. 이 둘이 모여 ‘정원에 꽃이 지는 어느 봄날 남자의 척추뼈가 분리됐네. 남자는 그날부터 산소 대신에 한숨을 마시며 사네’(1집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 같은 노래를 내 놓는 것은 아마도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콜라주일 듯. 이 범상치 않은 조합의 지적이면서도 기괴한 느낌은 여전히 새롭다.
“자꾸 우리 음악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읽어내고 그러는데… 어떤 사람은 코스모스를 보고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웃고 또 누군 멍하니 있고 그러지 않아요? 그냥 그렇게 알아서들 듣게 놔뒀으면 좋겠어요. 우리 음악이 어떤 거냐고 물으면, ‘어어부 같은 느낌의 음악’이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니깐.”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