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부터 "형, 이 얘기 웃기지 않아요?" 라고 시작하는 그의 유머는 썰렁하기 일쑤다. 그럴 수밖에. 재치 있는 말장난이나 이야기, 힘센 인간에 대한 조롱, 성적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다. 머쓱해서 "난 재미있는데. 이상하네."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는 육상효 감독. 그 때 웃고 있지만 눈빛은 슬픈 그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유심히 살펴보았다면, '육상효식 유머'의 본질을 조금은 알 수 있었으리라. 그가 말하는 '웃기는 이야기'란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슬픔들이 빚어내는 상황극임을.
■ 처음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에 뛰어들었을 때, 어느 조명감독이 이런 말을 했단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밝음이 보인다." 육상효는 이를 자기 코미디에 대입했다. '눈물이 있어야 웃음이 산다. 슬픔이 웃음을 증폭시킨다.' 대단한 깨달음도 아니다. 일상에서건 영화에서건 '육상효식 유머'는 원래 그랬으니까. 변한 것도 없다. 장편 데뷔작 에서 애인을 찾아 무작정 미국 땅을 밟은 주인공이나,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영화 에서 부탄 사람으로 위장취업한 방태식(김인권)의 애환이 주는 웃음을 보면.
■ 어떤 사람들은 강하고 완벽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영웅을 좋아한다. 온갖 고난과 위험을 뚫고 귀환하는 오디세우스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액션과 사극을 만들거나 본다. 그러나 육상효는 자신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못 돌아오고, 때론 약한 자로, 때론 이방인으로 그냥 살아가는 존재. 코미디야말로 오늘 '나'를 내일 아침에 뒤집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런 인간들이 자기 약점을 위로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아닐까. 육상효 감독에게 의미 있는 코미디란 이렇게 당사자에게는 도저히 코미디일 수 없는 슬픔에서 찾아낸 웃기는 상황들이다.
■ 의 탄생도 그렇다. 1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미 일상이 됐다. 그들을 일방적 피해자로만 다루는 것 자체가 일상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픔만이 아니라, 그들 삶의 건강성과 유머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한 만큼 최근 내한한 미국 시나리오의 거장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강조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토리 성공 공식, 재미와 감동의 과학성이 가진 힘을 육상효가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무작정 따라가기는 싫다. 나만의 웃기기를 계속하겠단다. "영화로 못하면, 사석(私席)에서라도."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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