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1752~1800ㆍ재위 1776~1800)가 많은 후손을 두고자 자신의 이름인 '李祘'의 발음을 '이산'에서 '이성'으로 변경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최근 연구모임인 문헌과해석의 정기발표회에서 '정조 어명의 개칭: 이산과 이성 사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렇게 주장했다. 안 교수는 논문에서 정조의 이름 '祘'은 원래 '산'으로 읽혔지만 1796년 8월 한자 운서인 '규장전운(奎章全韻)' 발간을 계기로 '성'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조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이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문학자 남현희씨는 2008년 '전운옥편'과 '자전석요' 등 조선 후기에 발간된 운서의 발음을 근거로 정조 당대에 '이성'으로 읽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안 교수 주장의 요지는 정조의 이름 '李祘'이 당대에 '이성'으로 불린 것은 맞지만 이는 '규장전운'이 발간된 이후부터라는 것. 이 책 발간 이전 즉위 대부분의 기간에는 '이산'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정조는 즉위하던 해인 1776년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같다고 해서 평안도와 충청도 고을인 이산(理山)과 이산(尼山)을 각각 초산(楚山)과 이성(尼城)으로 바꾼 사실이 있다. 왕조시대 군왕의 이름은 어휘(御諱)라 해서 인명, 지명 등에 사용하지 않았다.
안 교수는 정조가 이름 '祘'의 발음을 '성'으로 바꾼 이유는 자손의 번성을 꾀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하고, 그 근거로 19세기 문인인 옥산 장지완(1806~?) 이 남긴 '규장전운간오(奎章全韻刊誤)'라는 글을 제시했다. 장지완은 이 글에서 정조의 이름은 본래 '산'으로 읽혔으나 '규장전운' 발간 이후 '성'으로 바뀌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운서인 '규장전운'의 '성'자 자리에 본래 있던 '渻'을 빼고 '祘'을 넣었다는 것이다. 장지완은 "왜냐 하면 '渻'이라는 글자는 서약봉(徐藥峯)의 이름으로 자손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서약봉은 당시 대표적 세족인 서성(徐渻ㆍ1558~1631)으로, 그 가문에서는 많은 정승과 판서를 비롯해 서호수 서유구 등 학자를 배출했다. 정조는 자손이 귀했는데 딸 둘을 두었으나 한 명이 일찍 죽었고, 아들(나중의 순조)은 1796년 당시 7세에 불과했다.
안 교수는 "정조의 이름이 1796년 이후 '이성'으로 바뀐 것은 분명하며, 현재 그 이유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로는 자식을 많이 낳으려는 정조의 의지로 추론할 수 있다"며 "급작스러운 이름 개칭이 성운학적 근거에 의한 것인지, 정치적 고려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좀더 탐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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