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을 전후하여 세계경제 환경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그 하나는 독일통일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를 계기로 개방과 자유경쟁의 신자유주의질서가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경쟁력이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새 질서가 세워졌다.
다른 하나는 잠자고 있던 중국경제의 부상이다. 14억 인구의 중국의 산업화는 엄청난 저임노동력의 공급, 막대한 원료와 에너지의 수요, 새로운 투자 및 상품시장의 창출, 대규모의 저가제품 수출 등 세계경제에 판도를 바꿀 만큼의 큰 변화를 불러 왔다.
이러한 두 가지의 새로운 환경전개는 세계경제에 그 후 약 20년간 고성장 저물가의 고원경기를 불러 왔다. 고성장이면 인플레가 수반되는 것이지만 이 기간 중에는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의 저가제품이 세계시장을 뒤덮으면서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이 압도하였다. 예컨대 미국의 신발과 의류가격은 2000년을 전후한 10년 동안 10%나 오히려 하락하였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의 16년간 미국경제는 연평균 3.1%의 고성장을 누리면서 인플레는 2% 내외에 그쳤다.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저금리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나라마다 통화가 팽창하고 유동성이 넘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저금리와 유동성 팽창 그리고 고소득은 부동산 과 주식 등의 가격을 폭등시켜 자산거품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1997~2005년의 8년 동안 주택가격 상승률을 보면 남아프리카 244% 영국 154% 스페인 145% 호주 114% 스웨덴 84% 미국 73%로 전 세계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8년에 들어서서 이 자산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미국 집값은 약 30%하락하고 주가는 반 토막이 났으며 원유가는 배럴당 150달러에서 40달러로, 벌크선 운임은 90%가 하락하였다. 이러한 붕괴가 가져온 국제 금융위기는 미국의 부동산 금융시장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부동산 거래는 거래대금의 약 85%를 그 부동산을 담보로 한 금융기관 대출로 결제하게 된다. 그런데 집값이 폭락하자 집의 담보가치가 대출액보다 낮게 되어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하게 되고 이것은 금융위기로 치달은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미국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취약성이 크게 증폭시켰다. 즉 금융기관은 주택담보 대출을 해주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 대출채권(債權)을 담보로 채권(債券)을 발행하였다. 그런데 이 채권을 사간 금융기관은 이것을 담보로 다시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당초 담보대출액의 10배 20배 규모로 부풀려 채권이 떠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일부 금융기관의 담보대출 부실화는 전국으로 번져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2008년 초부터 미국 금융기관들의 연쇄도산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베어스턴스 리만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세 개가 도산하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만 살아 남았다. 은행과 보험회사 그리고 자동차 회사 등 대기업들도 불황 속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들 기업들의 주식 시가총액을 2007년 10월과 2009년 3월을 비교해보면 미국 최대은행인 시티그룹은 367조원에서 8조원으로, 미국 제일의 보험회사인 AIG는 286조원에서 1조원으로,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은 34조원에서 1.6조원으로 떨어져 위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위기에 몰린 미국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자구책으로 모든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미국의 위기는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집값하락은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금융기관 부실화, 실물경기 침체, 해외자금 회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세계화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여기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에서의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제체력이 매우 튼튼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고성장 저물가 저금리의 대호황을 누리며 자산거품을 쌓아온 미국이나 유럽과는 상황이 달랐다. 2008년 위기 당시 우리의 기업부채 비율은 100%이하, 은행의 부실자산비율은 1%미만이었고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 뿐 아니라 재정은 OECD국가중 가장 건실하였으며 집값은 보합을 유지하였고 주택담보대출의 문제점도 없어 경제체력이 매우 건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이 일시에 빠져 나가고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이 어려워져 우리도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리하여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심각한 경기침체로 경제성장률이 2008년에는 2.3% 2009년에는 0.2%로 내려갔다. 그러나 미국이 겪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부도는 한 건도 없었다. 당시 우리의 위기는 구조적이라기보다 단기적인 문제였으며 이 문제는 한미 두 중앙은행 간에 300억 달러, IMF와 220억 달러, 도합 520억 달러를 필요할 때 인출할 수 있도록 한 외환협정이 맺어짐으로써 풀리기 시작했다.
IMF외환위기는 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하여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2008년 위기는 경제체질이 건실하여 그런 문제는 없었던 대신 중소기업 자영업 실업자 등이 주로 피해를 입어 민생 쪽의 어려움이 컸다는 점에서 다르다 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