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2008년에 오세훈 시장을 면담해 약속을 받아 내고 시와 공문이 137회 오갔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공정한 사회'냐."
서울 일원동 인근 주택가 주민으로 9년 동안 탄천물재생센터 하수 슬러지 처리 시설 등의 악취 문제를 제기해 온 권용태(72) 일원동환경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권씨 등 주민들은 2002년 준공 및 가동된 슬러지 건조 시설의 악취를 못 견뎌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 한심한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
코오롱은 2007년 782억원 규모의 고도 처리 시설 공사를 따내 공사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고, 삼성중공업도 배관 내 슬러지 이동 방식 변경 공사를 이미 끝냈지만 악취가 완전히 잡힐지는 의문이다. 특히 고도 처리 시설 공사의 경우 시가 1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악취 저감 시설을 재설계하고 보완 탈취 설비를 다른 시공사에 맡기는 안까지 검토 중이다. 그만큼 걱정이 크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 슬러지 처리 시설은 부실 공사 때문에 악취에 취약하다.
한심한 시설
처리 후 탈수 케이크가 만들어진 뒤 발산 가스만 포집해 없애고 케이크 자체의 탈취는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탄천물재생센터뿐 아니라 중랑 서남 난지 등 서울의 나머지 3개 물재생센터도 탈수 케이크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어 해양 투기나 육상 매립을 위해 이동하면서 나는 악취에 대책이 없다.
민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지사. 탄천물재생센터 인근 주민 2만여명은 연일 악취 민원을 계속하고 있고, 지난해 85만2,070톤으로 전국에서 슬러지 발생량이 가장 많은 경기 지역에서는 도의회 산하 주민기피시설대책특위원회가 2008년부터 슬러지 악취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있다. 수도권 이외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악취 문제는 주민들의 재산권과도 직결된다. 슬러지 처리 시설과 하수종말처리장이 있는 탄천물재생센터 인근의 아파트의 가격은 입지 조건이 비슷한 인근 개포동 아파트에 비해 평당 1,000만원 가량 떨어진다.
바다가 이상해요
처리 능력도 문제가 많다. 처리된 슬러지는 해양 투기, 육상 매립, 소각되는데 처리 능력 저하로 생겨난 부실 슬러지는 해양 투기 시 특히 부작용이 크다.
해양경찰청은 지난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배출한 슬러지 142만128톤을 바다에 버렸다. 해경 규정상 슬러지는 동해병(경북 포항시 동쪽 125㎞ 해역) 동해정(울산 남동쪽 63㎞ 해역), 서해병(전북 군산시 서쪽 200㎞ 해역) 등 먼바다에 투기하게 돼 있다. 하지만 한 해양 전문가는 "군산항 포항항 동해항 근해에서 2005년 머리카락이 든 꽃게가 나온 것 등으로 볼 때 해경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근해에서 슬러지를 버리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근해의 갯지렁이나 불가사리 속출도 불량 슬러지의 불법 투기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슬러지 케이크와 분뇨, 폐수 등이 함께 버려지는 이들 해역 인근에서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하고 오염이 심해져 내성이 강한 갯지렁이와 불가사리 등이 부쩍 느는 반면, 조개 등은 씨가 말라 어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 해역 어패류를 섭취한 시민들의 건강도 위협받는다.
슬러지 해양 투기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국토해양부가 동해병의 절반과 서해병의 5분의 1 가량의 해역에서 슬러지 투기를 금지한 것은 이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같이 부작용이 큰 해양 투기를 중단하려면 육상의 슬러지 처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질 좋은 슬러지 처리 시설이 적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435개 시군구가 운영하는 슬러지 처리 시설 가운데 대부분인 하수종말처리장은 혐기성 소화조 등만 이용해 슬러지를 간단하게 처리하고 있다. 반면 슬러지를 더 줄일 수 있는 건조 시설을 갖춘 곳은 47개(55개 건설 중)뿐이다.
그나마 있는 슬러지 건조 시설도 처리 효율과 악취 절감 능력에서 문제가 많다. 건조가 잘된 슬러지는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지난해 이런 경우는 없었다. 또 처리가 잘돼 냄새가 적은 슬러지는 복토재 등으로 재이용할 수 있는데 이는 지난해 77만2,243톤으로 해양 투기량(142만128톤)의 절반에 그쳤다.
홍수열 자원순환연대 정책국장은 "해양 투기 슬러지 2기준 적용이 몇 개월 남지 않았는데도 슬러지 처리 시설은 매우 한심한 상태여서 해양 오염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실효성 있는 시설을 마련해 주민 민원을 감소시키고 해양 투기량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