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네: 열린 도시 안에서'라는 제목으로 지난 2일 개막한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18개국 작가 91명이 참여한 미술행사다. 그런데 정작 눈으로 볼 수 있는 조형물이나 그림 같은 구경거리는 거의 없다. 2005년 공공미술을 테마로 출범한 APAP는 2007년 2회까지 행사를 치르며 유명 작가들의 100여점에 가까운 설치작품을 안양 곳곳에 남겼다.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박경 미국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교수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도시에 일방적으로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총 23개의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작가들이 안양시민과 함께 진행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다. '만안의 이미지_기록과 기억'은 안양 지역 중고교 학생 3,000여명이 사진작가 3명과 함께 재개발이 진행 중인 만안구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프로젝트이다. '우리들의 방_여성들의 수다'는 미국 작가 수잔 레이시가 재래시장, 공원, 학교, 실내수영장 등 15개 공공장소에서 여러 여성들과 대화를 나눈 퍼포먼스 작업이다. 마례티자 포트르츠(슬로베니아)는 '열린 텃밭'이라는 제목으로 대안학교 학생, 교사, 학부모들과 함께 6개월간 옥상 텃밭을 가꾸며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도시 농업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부림동 학운공원에 미국 건축가 아다 톨라가 노란색 컨테이너 8개를 조합해 지은 '오픈스쿨'을 찾으면 안양에서 벌어진 각종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사진, 영상물 등을 볼 수 있다. 미술작가 박찬경씨가 주민들과 함께 만든 영화 '다시 살고 싶어요, 안양에'도 볼 수 있다. 독일의 건축가 그룹 라움라보어의 '오픈하우스'는 나무로 만든 작은 방들을 탑처럼 쌓아올린 형태의 구조물이다. 사랑방, 카페, 온실 등 각 방의 용도를 정하는 것은 물론, 구조물 제작도 작가와 주민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입구에서는 자전거도 무료로 빌려준다. 자전거에 평상, 벤치, 테이블 등을 결합시킨 자코모 카스티눌라(페루)의 '자전거 프로젝트'인데, 작가와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이동식 공간을 제공한다.
안양역 내부에서 진행 중인 '불평박물관'에서는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불평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인근 거주지 및 상업지구 거리 사진을 파노라마로 찍어 병풍처럼 세워놓은 설치물 위에 시민들이 불만을 써붙이도록 했다. '주차할 곳이 없어요' '횡단보도를 만들어주세요' '10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철거해주세요' 등 주민들의 목소리가 스티커 위에 빽빽하다.
실제로 주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프로젝트도 있다. 건축가 신혜원씨는 '자율방범대 신축 프로젝트'를 통해 낡은 자율방범대 초소 4개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푸른색 대신 노란색, 연두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미고,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내부 공간도 새롭게 구성했다.
박경 예술감독은 "공공예술은 결과보다 예술적 실천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협력하며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행사가 주민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0월 31일까지. (031)389-5111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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