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물이 올 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물이 올 때

입력
2010.10.03 12:03
0 0

허은실

풀벌레들 바람에 숨을 참는다

물이 부푼다

달이 큰 숨을 부려놓는다

눈썹까지 차오르는 웅얼거림

물은 홀릴 듯 고요하다

울렁이는 물금 따라 고둥들이 기어오를 때

새들은 저녁으로 가나

남겨진 날개를 따라가는 구름 지워지고

물은 나를 데려 어디로 가려는가

물이 물을 들이는 저녁의 멀미

저 물이 나를 삼킨다

자다 깬 아이가 운다

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지상의 소리들 먼 곳으로 가고

나무들 제 속의 어둠을 마당에 홀릴 때

불리운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숭어가 솟는 저녁이다

골목에서 사람들은 제 이름을 살다 가고

꼬리를 늘어뜨린 짐승들은 서성인다

하현을 닮은 둥근 발꿈치

맨발이 시리다

물이 온다

● 서치라이트가 해변을 비추는 바다 옆 슈퍼마켓 야외 파라솔 아래에서 술을 마시던 밤이 있었습니다. 저녁 먹고 마실 나온 동네 중늙은이들은 술이라면 질린다는 표정으로 축대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더군요. 꼭 철 모르고 술 마시는 애들이라도 본다는 듯이. 물이 다 차오르기 전에 나는 취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석표에 따르면, 그 날의 고조 시간은 22시 16분이니 나는 때맞춰 취한 셈이겠네요. 무슨 때? 물때. 바다에 가면 물에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물이 새삼 아름답게 보이는 게 정해진 이치.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