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실
풀벌레들 바람에 숨을 참는다
물이 부푼다
달이 큰 숨을 부려놓는다
눈썹까지 차오르는 웅얼거림
물은 홀릴 듯 고요하다
울렁이는 물금 따라 고둥들이 기어오를 때
새들은 저녁으로 가나
남겨진 날개를 따라가는 구름 지워지고
물은 나를 데려 어디로 가려는가
물이 물을 들이는 저녁의 멀미
저 물이 나를 삼킨다
자다 깬 아이가 운다
이런 종류의 멀미를 기억한다
지상의 소리들 먼 곳으로 가고
나무들 제 속의 어둠을 마당에 홀릴 때
불리운 듯 마루에 나와 앉아 울던
물금이 처음 생긴 저녁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숭어가 솟는 저녁이다
골목에서 사람들은 제 이름을 살다 가고
꼬리를 늘어뜨린 짐승들은 서성인다
하현을 닮은 둥근 발꿈치
맨발이 시리다
물이 온다
● 서치라이트가 해변을 비추는 바다 옆 슈퍼마켓 야외 파라솔 아래에서 술을 마시던 밤이 있었습니다. 저녁 먹고 마실 나온 동네 중늙은이들은 술이라면 질린다는 표정으로 축대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더군요. 꼭 철 모르고 술 마시는 애들이라도 본다는 듯이. 물이 다 차오르기 전에 나는 취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석표에 따르면, 그 날의 고조 시간은 22시 16분이니 나는 때맞춰 취한 셈이겠네요. 무슨 때? 물때. 바다에 가면 물에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물이 새삼 아름답게 보이는 게 정해진 이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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