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과 중앙아시아이다. 기원 전 600년경 켈트족이 유럽 전역에 퍼뜨렸고, 16세기와 17세기에 각각 북미와 중국으로 전파됐다. 일본에는 19세기 말 서양요리와 함께 전해졌다. 당시 일본인들이 서양의 포크커틀릿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변형한 돈가스를 먹을 때 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인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양배추 씨앗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양배추 농사는 미군정 시절 스테이크와 양배추 샐러드를 즐겨 먹던 미군이 주둔하면서 군납을 위한 계약재배가 번창한 게 계기였다.
■ 서양에서는 칼슘과 비타민 등이 풍부한 양배추를 요구르트, 올리브와 함께 3대 장수식품으로 꼽는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원기를 북돋아주고 마음을 침착하게 해주는 야채'라고 했다. 위 점막을 보호하고 재생을 돕는 비타민U와 K가 들어 있어 위장병 치료에 효과가 좋고, 백혈구의 작용을 활성화하는 항암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취기를 깨는 데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술 마시기 전에 양배추 수프를 먹는 관습이 있었다. 상처가 났을 때 구운 양배추 잎을 붙이는 민간요법도 널리 쓰였다.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많아 아이들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 서양 사람들은 양배추를 즐겨 먹는다. 수프와 샐러드는 기본이고, 식초나 소금에 절여 먹거나 여러 요리의 재료로 널리 이용한다. 쉽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줘 다이어트에도 활용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별로 인기가 없다. 맛이 밋밋해 생채나 샐러드 외에는 잘 쓰지 않는다. 뜨거운 물에 데쳐서 된장에 찍어먹기도 하지만, 열에 약한 주요 영양소가 쉽게 파괴되는 문제가 있다. 배추 김치에 비해 빨리 시어지고 수분 함량이 적은 것도 단점이다. 그래서 과거 배추를 구하기 힘든 전방의 군부대나 유학생 외항선원 등이 김치 대용으로 활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식탁에 배추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양배추 값도 배추값 못지않게 비싼 현실을 모르는 엉뚱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인터넷에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연상된다"며 이 대통령을 '마리 명투아네트'로 부르거나, "김치 맘 편히 먹으려면 이민 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비싸면 적게 먹거나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된다'는 생각이 '실용'일지 모르지만, 김치 없으면 음식을 넘기기 힘든 시민들을 뿔나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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