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주최 고등교육정책학회(IMHE)에 다녀왔다. IMHE는 고등교육 정책에 관해 각국의 사례와 정책 방향을 공유하는 장으로 1969년부터 40년째 진행되고 있는 행사다. 각국의 대학 및 정부 관계자들의 수십 편의 발표 가운데 필자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찰스 리드 총장의 "옥스포드나 버클리는 다른 대학보다 더 잘하는 대학이 아니다. 단지 다른 역할을 부여 받은 대학일 뿐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대학들은 매년 발표되는 대학 랭킹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여러 지표들이 있지만 대학 순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유명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편수처럼 주로 연구 업적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명도를 획득한 대학이 매년 훌륭한 학생을 받아들여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아 논문을 써내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을 제한된 자원으로 훌륭히 교육시켜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배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 평가는 오로지 배출한 성과가 얼마나 우수한지만을 따질 뿐 얼마만큼의 자원을 투입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과를 냈는지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IMHE에서 주로 논의된 대학은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명문대학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비록 이름난 대학은 아니지만 지역의 산업과 고등 교육에 관한 수요를 철저히 파악하여 교육 과정을 개편함으로써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고 배출한 학생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크게 높아진 작은 대학들의 사례와 경험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었다. 또한 입학생의 성취 수준과 졸업생의 성취 수준을 비교하여 얼마나 향상시켰는지에 따라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였다. 찰스 리드 총장은 모든 대학이 옥스퍼드나 버클리가 될 수는 없고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대학은 '걱정 없는 대학'과 '걱정 많은 대학'으로 나뉜다. 걱정 없는 대학은 다시 '걱정할 거리가 없는 대학'과 '걱정할 마음이 없는 대학'으로 나눌 수 있다. 걱정할 마음이 없는 대학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는 걱정할 거리가 없는 대학보다는 걱정은 많은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대학, 어떻게 하고 싶으나 자원이 부족한 대학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지원하는 데 집중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사부담 비율이 매우 높은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대학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 과거처럼 대학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정부가 대학의 재정과 운영 현황에 관한 정보를 수요자들인 국민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대학들이 정부가 아니라 수요자인 국민과 학생을 무서워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시장의 위력이 발휘될 것이며 우리 대학의 경쟁력도 세계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쟁력은 한두 대학의 랭킹이 높아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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