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지음
푸르메 발행ㆍ284쪽ㆍ1만2,000원
소설가 윤대녕(48ㆍ사진)씨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그는 소음에 예민한 귀를 달래려 총각 시절부터 취미로 삼았던 고전음악 듣기를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트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주방에서 아내가 설거지하는 소리, 물기가 마른 그릇을 찬장 속에 하나씩 쌓아놓는 소리, 베란다에서 빨래의 주름을 펴기 위해 옷을 터는 소리” 같은 것. “그것은 혼자 어두운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막연히 자아도취적 감정에 빠져 있을 때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보다 구체적인 삶의 평화이다.”(25쪽)
문학에서든 생활에서든 누구보다 예민했던 그였다. 그랬기에 역사와 사회의 울타리에 매여 있던 한국문학에 생태적, 신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선 한결 편안하고 담담해진 그를 만날 수 있다. 올해로 등단 20년을 맞고 50대 문턱에 다다른 그는 나이듦을 긍정하면서 사소하고 구체적인 일상의 기쁨에 눈을 돌린다. (2007), (2010) 등 그가 최근 낸 소설집에서 예전처럼 현실 너머가 아니라 현실 자체를 질료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봄이 오면 이끌리듯 지리산 쌍계사로 내려가 보름 간 머물다 오곤 했다’는 대목 같은 걸 만나면 그가 천상 작가임을 새삼 확인하는 한편,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 아닌 일부로 여기는 그 특유의 ‘생물적 상상력’의 근원을 엿보게 된다. “벚꽃이 필 무렵 (쌍계사에) 내려갔다가 꽃이 다 지면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야만 심정적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수 있었다.”(82쪽)
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40대에 접어든 이후 나는 조금씩 절기를 회복해가는 느낌을 받는다. 정녕 날짜와 요일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삶을 살고 싶다.”(44쪽)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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