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큰 관심사로 등장했다. 최근 이틀 동안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TV로 생중계된 인사청문회는 마치 '윤리위원회'와 같은 느낌이다. 세계경제 규모 9위의 국가 업무를 수행할 고위공직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청문회라면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위공직자는 특정 분야의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인데, 업무를 수행할 전문성이라든가 계획이나 소신 등에 대한 질문 내용은 찾기 어렵다. 개인의 재산과 집안문제 등 사적 영역의 일만 가지고 전 국민의 시간과 이목을 볼모로 잡는다는 것은 국가자산의 낭비이자 국정의 한 과정인 청문회 자체를 비하하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재산의 과다가 적격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정당한 수단으로 축적한 재산이라면 능력을 입증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거나 사리사욕을 위해 실정법을 위반한 경우는 그 어떤 후보자라도 용인되어선 안 된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이 후보자 인사검증 자료를 의회에 제출하면 의원들은 그 자료로 후보자의 신상, 도덕성을 예비 심사하고, 실제 청문회에서는 예비심사에서 문제가 확인된 사항을 심층 검증한다. 고위 공직후보자를 선정할 때 국세청, 연방수사국(FBI),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각각 검증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 기관별로 후보 검증 경쟁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에 부실 검증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우리도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부터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며 무엇보다 미국 청문회 제도와 같은 도덕성과 정책수행 능력 검증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검증 시스템의 핵심은 고위공직자 후보가 되는 인사의 자격 여부다. 사회와 시대의 필요를 반영하되 고위공직자의 윤리도덕성, 전문성, 업무수행능력, 마인드와 소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소양과 자질을 검증하는 단계적 검증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청와대 인사팀의 자체 검증시스템은 물론이지만 국회청문회에서도 도덕성이나 윤리성과 같은 내용은 비공개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직자의 권위를 손상하는 사안을 자체적으로 엄정하게 걸러낸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는 공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정을 수행하여 국가를 이끌고 가야 하는 공직자의 업무적 성과를 위한 조치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존심과 윤리성에 큰 상처를 입은 공직자에게 무슨 권위가 부여될 것이며, 설사 공직에 오른다고 해도 무슨 힘으로 공무원 사회와 국민들 앞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세계정치경제질서를 이끌어갈 글로벌 시스템을 구축하는 G20 정상회의의 주빈국인 대한민국 땅에서 구태의연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국정수행의 공백만 심화하고 있으니 참으로 암울하고 창피한 일이다. 지난 시간의 성공적인 국가경영의 결과 선진 글로벌 기업들은 대한민국을 첨단기술의 허브 국가이자 시스템화가 가능한 나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정치운영 시스템과 질서를 선진화하고 제도화하기를 기대한다.
신박제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ㆍ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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