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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퀴르발 남작의 성' 가짜를 진짜처럼… 기발한 상상력 입담으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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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퀴르발 남작의 성' 가짜를 진짜처럼… 기발한 상상력 입담으로 변주

입력
2010.10.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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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304쪽ㆍ1만1,000원

2007년 등단한 소설가 최제훈(37ㆍ사진)씨의 첫 소설집이다. 이 책에 작품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우찬제씨의 적확한 비유처럼 최씨의 창작법은 시체 조각을 꿰매어 괴물을 탄생시킨 프랑켄슈타인 박사(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괴기소설 속 인물)을 절로 연상시킨다. 그는 기존 소설, 영화, 역사 등 갖가지 문화적 소재들을 글감으로 끌어들인 뒤 다양한 서술 형식을 빌려 패러디하고 재조합한다. 그렇게 탄생한 ‘괴물’ 같은 이야기는 일단 새롭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며, 게다가 지적이기까지 하다.

최씨의 등단작이기도 한 표제작은 그의 문학적 개성을 잘 보여준다. 고성(古城)에 살면서 아이의 인육을 먹고 젊음을 유지하는 퀴르발 남작을 주인공으로 한 미국 공포영화가 있었다는 설정 아래 최씨는 이 영화와 리메이크작, 영화의 원작소설을 둘러싼 이야기를 입담 좋게 들려준다. 영화를 논하는 대학 강의록, 감독을 인터뷰한 잡지 기사, 영화 감상을 적은 인터넷 게시글, 영화를 모방한 범죄를 보도하는 방송 뉴스, 원작소설의 모태가 된 구연동화 등으로 이야기 형식은 현란하게 변주된다. 이 영화가 매카시즘이 판치던 1950년대에 만들어져 정치적으로 곡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 등에선 작가의 사회적 통찰력이 번뜩인다.

영화라는 원재료에서 파생되는 서사와 담론을 펼치는 이 작품처럼,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5편은 원(原)텍스트가 있는 ‘2차적 텍스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중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탐정소설의 고전인 셜록 홈즈 시리즈를 패러디한 작품. 한때 중단됐던 홈즈 시리즈가 독자의 성화로 재개되면서 부활한 홈즈는 자신을 만든 코난 도일의 수수께끼 같은 자살 사건을 맡아 자신의 창조자와 지략 대결을 펼친다.

본래 신과 인간의 가교 역할을 하던 마녀들이 중세 마녀사냥의 광기에 휘말리는 과정을 기사 형식으로 쓴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태연히 인터뷰이로 불러내는 농담 같은 이야기에, 특정 부류를 희생양 삼아 영위해온 인류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았다. 작가 자신의 다른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이 모여 난장을 벌이는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스스로 제 작품을 패러디하는 작가의 기발한 착상이 돋보인다.

비교적 정통적인 서사의 기법을 따르고 있는 작품들도 범상치 않다. ‘그림자 박제’는 살인죄로 붙잡혀 정신과 의사와 면담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자기고백 형식으로, 회계사이자 기러기 아빠인 그가 내면의 또다른 인격들과 만나면서 서서히 정상적 삶의 궤도를 이탈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연적(戀敵)들의 인생을 파탄 내고는 그 일을 잊는 여주인공의 선택적 망각(‘그녀의 매듭’)이나, 주인공 남녀가 결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가십거리로 삼는 가상의 여성(‘마리아, 그런데 말이야’)을 통해서도 작가는 인간 내면의 숨은 욕망을 비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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