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수능개편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 개편안의 골자는 수능 교과목의 축소다. 일견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으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까지 사교육 시장을 키워온 양대 산맥은 바로 수학과 영어이다. 정부는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사교육 시장을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수능에서 수학과 영어, 두 개 교과의 비중만은 끊임없이 확대시켰다.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수학, 영어 두 교과의 특징에 대해서는 이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점과, 단기간의 시간투자나 노력만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두 교과와 사교육과의 관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수학과 영어는 교과내용의 계열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단계를 건너뛴 학습이 불가능하다. 단기간에 잘 하기 어려워 초등학교 이전부터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자 하는 선행학습이 시작된다. 또 단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학생의 경우, 이전 단계를 필요한 만큼 배우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지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다. 흔히 도구교과라 불리는 수학과 영어의 특징은 잘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비용 투자로 직결된다. 도구교과는 특정한 기능을 훈련하는 교과이기 때문에, 숙지보다는 숙련이 필요하다. 시험도 배운 기능에 대한 응용력을 테스트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사교육 없이는 잘 하기 어려운 교과인 것이다. 반면, 역사, 지리와 같은 인문 교과들은 제한된 범위의 내용을 숙지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교과목들이다. 이런 교과들의 경우, 실제로 단기간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 EBS 강의를 시청하여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지금의 입시와 수능 체제 하에서는 수학과 영어를 잘 못 한다는 것은 곧 원하는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두 교과의 비중이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에, 다른 교과목의 성적이 좋아도, 만회할 수가 없다. 이 두 교과에 소질도 없는데다가, 사교육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학생의 경우,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영수 위주의 수능개편안이 학교 현장에 부정적인 파장을 몰고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도 비수능 교과의 경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것을 거북해하며, 자습시간을 주거나, 수업을 듣지 않고 각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비수능 교과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느끼며, 필요한 교과만 듣는 학원을 더 선호한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영수 위주의 교육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영어를 말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기능만으로, 미래 지식 기반 사회에 적합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이것이 교육 수요자가 원하는 것이고, 다른 선진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의 방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인가? 발표된 안에 따르면 우리 교육은 다양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갖춰 스스로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수학과 영어(학원)에 장기간 투자를 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갖춘 인간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수능개편안이 과연 교육 수요자, 국가, 사회, 그리고 사교육 공급자 중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양호환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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