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 파장이 김치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소매점과 식당, 급식업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와 가계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 자칫 이번 배추 파동이 사회문제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정용 포장김치 1위 업체인 대상FNF는 ‘종가집’ 김치의 생산량을 최근 50%대로 줄였다. ‘하선정’ 김치를 제조하는 CJ제일제당도 9월 한 달간 평소의 절반 수준인 460톤 정도만 생산했다. 대상FNF 관계자는 “9월부터 배추 공급량이 뚝 떨어지더니 최근엔 계약 물량의 30%를 채우기도 어렵다”며 “배추값을 감당하기도 어려운데다 물량 자체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 김치업체들 중에선 아예 공장 가동을 멈춘 경우도 많다. 매일 5톤 가량을 생산하던 경기 용인시의 정훈식품은 지난달 29일부터 생산직 직원 21명에게 열흘간 무급휴가를 가도록 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일상회도 추석 연휴 때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정훈식품 김모 사장은 “공장을 돌려봐야 적자만 쌓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장김치의 생산량이 줄면서 대형마트와 소매점에선 매일같이 품절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점포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납품 요구량의 30~40%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고, 신세계이마트 관계자도 “비싼 배추 대신 포장ㆍ즉석김치를 찾는 소비자가 많지만 공급량이 부족해 오후 2~3시면 물량이 바닥나곤 한다”고 전했다. 이들 대형마트는 배추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계약농가 수를 대폭 늘리는 동시에 가을배추 출하지인 호남지역에 바이어들을 대거 파견했다.
식당과 급식업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김치찌게 전문점은 지난달 30일부터 가격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했다. 주인 전모(57)씨는 “추석 전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이제 여분의 김치마저 동이 나 재료값이 더 나가게 생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배추를 주재료로 하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의 한 추어탕집은 우거지 값을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렸고, 많은 식당들이 배추김치 대신 열무나 오이김치 등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울대 교내식당을 운영하는 생활협동조합은 내주부터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 등을 메뉴에서 빼기로 했고, 연세대 교내식당도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를 내놓는 날을 늘릴 예정이다. 한양대와 건국대 교내식당도 배추김치를 장아찌와 단무지 등으로 대체키로 했다.
독거노인과 저소득층가정에 김장김치를 담가주던 각종 행사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대전시립노인복지관은 “지난해 무료급식 대상자와 장애인, 독거노인 등 600여명에게 김장김치를 전달했는데 올해는 행사 자체가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연탄은행 관계자도 “작년에는 후원금으로 배추를 사서 100여 가구에 나눠줬지만 올해는 배추값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추나 김치를 조금이라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새 소비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절임배추를 시세의 20% 정도 가격(20㎏에 2만5,000원)에 판매하는 한 사이트에선 주문이 폭주하면서 연일 매진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배추를 비롯한 채소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면서 김장 재료 도난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강원 평창군에선 배추 420여포기를 1톤 화물차에 싣고 달아나려던 60~70대 노인 두 명이 밭주인에게 덜미를 잡힌 일이 있었고, 같은 달 28일에는 경기 수원시에 사는 송모(78)씨가 인근 지구대를 찾아가 “텃밭에 뿌린 배추 모종 120여개를 도둑맞았다”며 순찰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수원=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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