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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 21년 만에 K리그 정상 노크… 제주 박경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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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 21년 만에 K리그 정상 노크… 제주 박경훈 감독

입력
2010.10.01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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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K리그 2010 시즌 초반만 해도 다들 ‘저러다 말겠지’라며 반짝 돌풍이라고 깎아 내렸다. 지난해 14위를 비롯해 2008년 10위, 2007년 11위, 2006년 13위 등 최근 수 년간 ‘꼴찌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즌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지만 바람의 세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돌풍이 토네이도로, 다시 태풍으로 갈수록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

1989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무려 21년 만에 프로축구 정상을 노크하고 있는 1위 제주 유나이티드(14승5무3패ㆍ승점 47) 이야기다. 지난 26일 서귀포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박경훈(49) 제주 감독은 “축구는 즐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적인 플레이도, 성적도 나올 수 없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믿음의 축구, 패배의식을 걷어내다

22-44. 지난해 제주의 득점과 실점 기록이다. 득점보다 실점이 정확히 2배 많다. 올 시즌 제주의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취임 당시 “득점과 실점을 바꿔 놓겠다”고 공언했고 약속을 지키고 있다. 리그 22경기를 치른 1일 현재 득점 42, 실점 20이다. 29일 FA컵 준결승전에서 수원 삼성에 승부차기(2-4) 끝에 결승진출이 좌절됐지만 홈 13경기 연속 무패행진 등 ‘안방불패’를 이어가며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박 감독이 부임 후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곳은 나태해진 정신력이다. 과거 선제골을 내주면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무너져 자연스레 몸에 뱄던 패배의식은 올 시즌 승부를 뒤집고 마는 근성으로 바뀌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간의 동료애도 없었고 운동장에서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나 열정 등 어느 것 하나 볼 수 없었다”며 “패배의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칭찬과 격려를 많이 했는데 그 말 없던 선수들이 웃고 떠들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팀 리빌딩’ 작업도 상위권 질주의 원동력이다. 구단의 지원 아래 박 감독이 데리고 오고 싶은 선수들을 90%까지 불러 모았다고 한다. 중국 리그에서 뛰던 김은중(31)에게 주장 임무를 맡겼는데, 12골 8도움(컵 대회 포함)을 올리며 믿음에 보답했고 2010 K리그 신인 트래프트 전체 1순위인 ‘제2의 홍명보’ 홍정호(21)를 잡는데도 성공했다.

혹독한 시련, 축구를 다시 돌아보다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 늦은 고1 때 축구를 시작한 박 감독. 그러나 천부적인 축구재능은 그를 대구 청구고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게 만들었다. 동기인 변병주 등과 함께 1979년 전국고교축구대회 5관왕에 오르는 등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1980년부터 10년 간 ‘태극마크’를 달고 2차례 월드컵(86년 멕시코ㆍ90년 이탈리아)에 출전했고 당시 포항제철에서 아홉 시즌(84~92년) 동안 134경기를 뛰었다. “한번도 후보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그였지만 2007년 축구인생 최대위기를 맞았다. 17세 이하(U-17) 남자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박 감독은 안방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월드컵에서 1승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결국 지휘봉을 반납해야 했다.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론도 많이 배웠고 축구를 다시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삼다도 축구’의 진수는 지금부터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붙여진 삼다도(三多島) 제주. 박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돌 같이 단단한 조직력을 갖춘 축구, 바람 같이 빠른 스피드 축구, 여자 같이 아름다운 축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두들 초반 돌풍이라고 했지만 우리 팀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 이제는 어떤 팀을 만나도 전혀 두렵지 않다”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초 목표(6강 플레이오프 진출)를 넘어 우승도 가시권에 와 있는데 아직도 손사래다. “축구는 창조의 예술입니다.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즐기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우승 욕심이요? 감독이라면 누구나 다 있죠. 하지만 욕심이 늘 일을 망칩니다. 기다리고 비우다 보면 자연히 채워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됐습니다.”

제주=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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