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제주시 용담2동. 한때 제주시의 중심이었지만 공항이 가깝다보니 시끄러워 집값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낙후 지역이 돼버렸다. 이곳에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늘푸른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아동복지교사로 3년간 일한 강순양(47) 대표가 아이들 돌보는 일이 좋아서 지난해 8월에 차렸다.
이곳에 SK텔레콤에서 무료로 제공한 인터넷TV(IPTV)가 설치되면서 아이들의 생활이 바뀌었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 및 지역아동센터와 손잡고 가정 형편상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에 IPTV를 무료로 설치해 주는 '행복한 IPTV 공부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말에 제주에만 10개 센터를 우선 지원했다.
30일 오후, 용담동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3층 건물 2층에 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살림집을 바꾼 10여평 남짓한 센터안에는 마침 학교 수업후 들른 초등학생 24명이 한창 공부 중이었다.
아이들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한글 받아쓰기였다. 24명 가운데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9명, 그 중에는 초등학교 3학년생도 있었다. 강 대표는 "집안이 어려워 부모들이 한글을 가르칠 틈이 없었고 학교에서도 이들에게 따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며 "그냥 두면 아이들이 한글도 모른 채 중학교에 진학할 판"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정부 지원으로 살아가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였고, 절반 가량은 한 부모 가정이었다. 강 대표는 "집에서 돌 볼 형편이 되지 않아 그대로 놔두면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라며 "학년에 따라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센터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저녁 밥을 먹은 뒤 귀가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센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교사가 강 대표와 고자옥(34) 씨 2명 뿐이다. 격일로 들르는 아르바이트생 2명을 포함해도 총 4명이다. 이들은 수업 뿐 아니라 장을 봐서 아이들 밥도 해주고 설거지, 청소 등 온갖 일을 다한다.
아이들 수업을 제대로 봐주기 힘든 상황에서 SK텔레콤이 제공한 IPTV는 천군만마 격이었다. 강 대표는 "무엇보다 교사 부족무제를 해결할 수 있어 큰 힘이 됐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며 웃었다.
한창 IPTV 수학 강의를 듣고 있는 K(10세ㆍ4학년) 군은 "학교 수업보다 설명이 자세하다"며 "수업 때 몰랐던 내용을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A(여ㆍ10세ㆍ4학년) 양은 "학교 TV 수업은 문제와 정답만 보여주기 때문에 풀이 과정을 알 수 없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며 "IPTV 수업은 풀이과정을 자세히 보여줘 선생님 설명보다 쉽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IPTV의 주문형 비디오(VOD)를 이용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고, 인터넷 이용법 등도 배운다. 그만큼 이곳 아이들에게 IPTV는 큰 희망이다. 센터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료로 볼 수 있는 과목이 늘어나는 것이다. J(여ㆍ9세ㆍ3학년) 양은 "미술, 음악 수업도 IPTV로 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제주 지역에 개설한 IPTV 공부방의 반응이 좋아서 올해 안에 전국 65개 지역아동센터에 IPTV 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유료 강좌 등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제주=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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