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시월입니다. 내 앞에 놓인, 내가 건너가야 할 31개의 징검다리를 헤아려 보며 시나브로 깊어지기 시작한 시간의 강가에 혼자 섰습니다. 나그네새들도 날개가 차가워지는지 강가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기고 있습니다. 불가에서 깨달음이란 길을 따라 걸어가다 얻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훌쩍 뛰어넘어 도착하는 곳이라 합니다.
뛰어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고 주장자를 내려치지만 나는 시월의 징검다리 하나 놓치지 않고 천천히, 더욱 천천히 걸어 볼 작정입니다. 어느 날 문득 단풍이 든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 하나하나 물들어가는 것을 헤아려 볼 작정입니다. 시월에 떠나는 것이 무엇이며 시월에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낱낱이 알아볼 작정입니다.
살면서 내게 펼쳐진 31일의 시월을 너무 바쁘게만 사용해버렸습니다. 오래 기다려왔으므로 진실로 간절하였으므로 시월과의 생의 가장 찬란한 연애를 시작하는 첫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처럼 설렙니다. 초등학교 운동장 조회시간 단상 위에 처음선 아이처럼 가슴이 뜁니다. 이 설렘 이 긴장 모두를 가지고 시월을 건너갈 것입니다.
웃고 싶을 땐 소리 내어 웃고 울고 싶을 땐 소리 내어 울며 시월을 건너갈 것입니다. 하늘은 고독하여 아득히 높아지고 물은 쓸쓸하여 제 속까지 맑아지는 시간, 온몸으로 시월을 건너가기 위해 첫 날 첫 징검다리 위에 첫 발을 디뎌 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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