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선 해변과 80여 곳의 크고 작은 리조트, 새로 단장한 호텔들이 기다리는 베트남 중남부 지역의 판티엣. 이제 막 휴양지로 변신을 시작한 이곳을 한 마디도 표현한다면 꾸밈없는 아름다움이다.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정글을 상상한다. 하지만 베트남 열대우림 속에 끝없이 이어진 사막이 있을 것이라곤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호치민에서 차로 3, 4시간 떨어진 판티엣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사막을 가진 곳이다.
도로망이 발달하지 못한 베트남의 국도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데 섞여 달린다. 가끔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오토바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달린다.
한낮의 뜨거움을 식히는 스콜이 지나간 오후, 열기와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등줄기가 땀으로 젖었다. 호텔을 나서니 지붕만 가린 SUV가 거친 숨을 토하고 있다. 사막으로 데려다 줄 차들이다. 낡은 엔진의 차량은 포장도로를 한참 달렸고 이후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 도로로 접어 들었다. 앞 차의 질주에 모래먼지가 하늘로 치솟는다. 창밖은 드넓게 펼쳐진 초지. 띄엄띄엄 솟아있던 나무들이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든다.
사막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붉디 붉은 흙바닥이 점차 눈부시게 햇빛을 튕겨내는 모래땅으로 전이된다. 곳곳에 덮개조차 없는 벽돌무덤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이곳에 안치 후 3년이 지나면 시신을 꺼내 화장하거나 뼈를 추려 가족무덤에 이장을 한다고 한다. 이장을 하고 난 빈 무덤들이다.
오프로드의 덜컹거림에 엉덩이가 시큰거릴 무렵 차량이 멈춰 섰다.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막 한가운데 환영처럼 자리잡은 연못이다. 수면의 절반은 연잎으로 덮였다. 한 바퀴 돌아보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할 넓은 연못이다.
짙푸른 연잎과 삭막한 사막과의 조화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야자열매까지 맛 볼 수 있는 호수 옆 쉼터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음료를 파는 여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호수의 넉넉함과 사막의 궁핍함을 함께 가진 얼굴로 환하게 웃어준다.
목을 축인 후 사막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바닥에서 치오른 메마른 열기로 후끈하다. 눈에 보이는 건 모래 아니면 파란 하늘이다. 함께 한 일행이 없다면 두려웠을 걸음이다.
모래바람 뒤로 카메라를 숨긴 채 한참을 걷다 보니 언덕 위에 초로의 여인이 서있었다. 손에는 장판 몇 장을 들고 전통 모자인 논(nonh)을 머리에 쓰고는 연신 손짓을 한다. 사막의 미끄럼을 즐기라고 부르는 손짓이다. 주변의 모래언덕 중에서 적당한 높이와 경사를 가진 곳을 골라 여인에게 빌린 장판에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삭막한 사막이 주는 즐거움이다. 엉덩이로 발로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 가는 입자를 타고 미끄러져 내린다. 벌린 입으론 모래가 한 줌. 그래도 웃음은 멈출 줄 모른다.
사막의 미끄럼틀에는 리프트도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다시 급경사를 힘들게 올라와야 또 한 번 모래 미끄럼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장판을 빌려주던 여인의 주름지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대비됐다. 사진 모델료까지 챙기는 억척스러움이 거북했지만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고맙다. 사막의 열기 속 고독한 기다림. 우리가 지불했던 몇 달러는 모래 미끄럼의 재미가 아닌 사막 위에 그녀가 서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다.
판티엣(베트남)=글ㆍ사진 김승균기자 Libra@hk.co.kr
■ 유황온천서 즐기는 진흙팩도 '개운'
판티엣의 사막을 즐겼다면 인근 빈차우에서 또 다른 베트남을 만나보자. 버스로 2, 3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빈차우는 90도가 넘는 유황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온천 진흙팩과 마사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온천수로 계란을 삶아 먹기도 한다.
여행 중 티격태격 다퉜던 연인이라도 함께 진흙팩에 도전하자. 온 몸에 진흙을 바른 뒤 햇볕에 바싹 마른 서로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터질 것이다. 단 너무 크게 웃는다면 얼굴에 주름이 남을 수도 있으니 조심을.
번차우 유황온천 안에 있는 악어떼도 재미난 볼거리다. 십여 마리의 악어가 다리 아래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관광객들은 다리 위에서 낚시 줄에 물고기를 매달아 악어와 신경전을 벌인다. 악어 주둥이에 줄에 매단 생선을 가만히 들이대면 꼼짝 않던 악어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입을 벌리며 튀어 오른다. 이때 잽싸게 낚시를 들어 올리면 악어 입이 ‘턱’소리를 내고 닫히며 허탕을 치게 된다. 순발력의 차이가 악어 놀리기를 얼마나 오래 즐길 수 있느냐의 관건이다.
빈차우=글ㆍ사진 김승균기자
■ 여행수첩
베트남항공이 매일 인천공항과 호치민 공항을 잇는다. 인천 오전 10시15분 출발, 호치민 오후 1시40분 도착이다.
호치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판티엣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누워 갈 수 있는 침대버스도 있다. 데탐 여행자 거리를 찾아가면 택시 부킹이 가능하다. 모래사막에 카메라를 들고 갈 때는 모래를 막을 수 있는 비닐봉투를 준비하면 좋다. 베트남의 화폐는 동이다. 현재 시세로는 1,000원이 1만6,700동 정도. 대부분 관광지에선 미국 달러가 통용된다. 일부 관광업소에선 오히려 달러를 선호하기도. 모래사막 SUV 차량 대여 1대 당 미화 50달러, 온천수 진흙팩 20달러, 마사지 10달러 정도, 악어 놀리기 물고기 1마리당 5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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