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직후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이 50%가 넘었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로 대통령이 제시한 공정한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꼽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70%가 넘고 있으니,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목표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것은 적실하다고 하겠다.
국정목표 설정만으론 부족
그러나 국정방향을 제대로 정했다는 것과 국민들이 과연 집권여당이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이전 정부들이 내세운 국정목표가 오히려 그 정부의 가장 취약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되새겨 보면 목표 설정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연 공정한 사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사실 다수의 국민들은 공정한 사회라는 수사적 표현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요즘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복지국가의 내용과 어떻게 다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공정사회의 핵심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별적 정책을 세우기 전에 공정사회에 대한 큰 그림의 얼개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공정한 사회(fair society)는 복지사회 혹은 정의로운 사회(just society)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우리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외국의 사례나 역사적 경험이 있는지도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진정성을 정치적 기득권의 한나라당이 솔선해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공정사회라는 목표가 다음 대선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장기적인 국가목표가 될 수 있다.
공정함과 관련되어 정치학에서는 영국철학자 제임스 해링턴의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국왕과 귀족의 자의적인 권력을 막기 위한 제도를 고민하던 그는 두 소녀가 한 조각의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그 방법이란 한 소녀가 케이크를 자르고, 다른 한 소녀가 자른 케이크 중 한 조각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케이크를 자르는 소녀는 두 조각을 똑 같이 나눌 때 가장 큰 몫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소녀가 자른 케이크를 먼저 고르기 때문에, 만일 자른 케이크의 크기가 다르다면 당연히 선택하는 소녀가 큰 몫을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조각을 정확히 똑같은 크기로 잘랐을 때 케이크를 자른 소녀의 몫이 가장 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정함을 위한 기본적 원리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는 그리 엄청난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강자들이 사회 규칙부터 잘 지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서적 측면부터 접근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경제적 약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규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며, 이를 지키지 않을 때에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엄격한 처벌이 따른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폰서 검사들에 대한 특검의 결과에 대해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을 단지 국민감정이라고 치부한다면 공정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집권층의 달성 의지가 중요
정치에 냉소적인 일부 국민들과 야권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과연 공정한 사회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시비를 건다. 그동안 공정치 못한 사회규칙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집단이 현재의 집권세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로 인해 미래가 발목 잡힐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집권층이 공정사회라는 목표를 실천적으로 이해하고 달성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