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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청자 핑계 대는 싸움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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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청자 핑계 대는 싸움꾼들

입력
2010.09.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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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식사비를 지불하지 않을 때조차 상당한 '시간' 동안 줄을 서야 밥을 챙길 수 있다. 방송 시청자들 역시 공짜로 프로그램을 제공 받는 것이 아니다. 수십만 원짜리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비로소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고 매월 2,500원의 수신료를 꼬박꼬박 납부해야 한다.

지상파가 제공하는 채널 외에 더 많은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려면 가외로 몇 천원부터 수 만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수신료를 면제 받은 가구라 하더라도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 최소한 일정량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방송사업자들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돈을 지불하게 하거나 아니면 돈의 원천인 광고를 보게 만들려고 일반 프로그램을 광고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들 눈에 시청자는 '현금'을 지불하는 기계로 여겨지거나 일정한 셈법에 의해 현금으로 환전 되는 '현물'에 지나지 않는다.

영리를 추구하는 방송사업자들에게 시청자란 그런 존재다. 시청자를 현금이나 현물로 간주하는 것은 그나마 호사스러운 표현이다. 방송사업자들은 '돈 되는 사람'인 시청자들을 아예 볼모로 삼아 상대와 흥정하거나 다른 사업자들을 공격하는 말 대포의 포탄으로도 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지상파와 케이블방송 사업자들간의 흉측한 싸움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상파는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에게 방송 프로그램을 사용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아니면 프로그램 재송신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케이블 측은 지상파가 시청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프로그램 사용을 묵인해 놓고 이제 와 지불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를 남용하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법원은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이 지상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들의 프로그램 채널을 가입자들에게 재송신하는 행위는 동시중계방송권 침해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간접 강제이행금 청구를 기각한 법원은 두 사업자들이 방송의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법원의 기대와 달리 당장 지상파 방송의 광고 일부가 삭제돼 재전송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자칫하다가는 두 달쯤 후에 전국적으로 1,500만 가구가 케이블로 지상파 채널을 보지 못하는 미증유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상파가 케이블사업자에 대한 형사고소를 취하하고 케이블 측은 일정 수준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두 사업자 사이의 분쟁은 불편한 진실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일반 국민들은 한국방송이 추진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의 부담을 지는 동시에 케이블사업자들이 추가로 부과하는 시청료를 이중으로 납부해야만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지상파 방송을 겨우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최첨단 미디어를 수용했다는 거창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수신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제한적이고 열악하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거리에다가 종편 채널용 교통신호 체계를 만들겠다며 발벗고 나선 방송규제기관이 기실 얽히고 설킨 교차로의 차량 혼잡을 해소하는데 굼뜨다는 점도 낯뜨겁다.

가장 뜨악한 것은 시청자들이 공짜로 텔레비전을 즐기고 있다는 방송사업자들의 시각이다. 시청자는 소중한 돈과 희소한 시간을 자원으로 투자하고 있는 어엿한 소비의 주체인데도 말이다. 시청자를 보는 관점부터 바꿔주기 바란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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