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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페리와 웨이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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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페리와 웨이하이

입력
2010.09.2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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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곳이다. 신라 해상왕 장보고(張保皐)는 823년 웨이하이 롱청(榮成)시 치산(赤山) 남쪽 기슭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이라는 사찰을 세웠다. 당시 이 지역 신라방, 신라촌에 거주하던 신라인들에게 위안과 단합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의 적산법화원은 1988년 중건됐는데, 산 정상에는 적산명신(赤山明神)상이 있다. 적산명신이 누군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9세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이 쓴 (入唐求法巡禮行記)를 근거로 장보고의 현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웨이하이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반도 끝자락에 있다. 도시 3면이 바다여서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지역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인구 20만의 작은 항구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180도 탈바꿈했다. 인구는 300만이 넘었다. 지리적 이점 덕분에 외국 투자 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0곳에 달한다. 그 중 1,500곳이 한국 기업이다. 한국 교민만 3만 여명으로, 시 전체 외국인 거주자의 90% 이상이다. 연간 60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그야말로 웨이하이는 한중 교류ㆍ교역의 전진 기지인 셈이다.

■ 웨이하이 변신의 물꼬를 튼 것은 한중 카페리였다. 한중 수교 2년 전인 1990년 9월 15일 오후 5시 승객 130명을 태운 카페리선 골든브리지호가 인천항을 출발, 17시간 뒤 웨이하이에 도착했다.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49년 이후 단절됐던 서해 뱃길이 41년 만에 다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중국을 잇는 카페리 항로는 인천 10개를 포함, 모두 14개에 이른다. 항로 개설 첫 해 9,400여명이던 여객은 지난해 114만명, 컨테이너 수송량은 409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에서 33만 8,000TEU로 800배나 증가했다.

■ 웨이하이는 경기도가 추진 중인 한중 해저터널의 기점 도시이기도 하다. 사업이 실현되면 또 한 번의 비약적 성장은 분명하다. 바다든 육지든 길이 열리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야 발전이 있는 법이다. 20년간 서해 뱃길을 통해 한중 양국이 누려온 눈부신 경제적 혜택이 이를 증명한다. 눈을 돌려 북한을 보면 답답하다. 육로길, 뱃길을 열지 않으니 많은 관광객들이 러시아 중국을 거쳐 백두산으로 간다. 있는 길도 툭하면 막는다. 동북아가 뱃길로 하나 될 때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권력 세습에만 골몰할 때가 아니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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