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법관', '연공서열 10년을 뛰어넘은 파격발탁',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
김영란(54) 전 대법관이 6년 전 임명됐을 당시 그를 따라다녔던 이 말들은 명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버거운 짐이기도 했다. 대법관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누구 못지않게 훌륭하게 수행하긴 했지만, 본인으로선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제대로 누릴 순 없었다.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1만6,000여건의 판결을 내리는 동안, 까맣던 그의 머리엔 서리가 내렸고 고장(황반변성)이 난 오른쪽 눈은 가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 달 24일 무거운 법복을 벗은 그를 최근 법원 바깥에서 다시 만났다. 아직도 소탈하고 밝은 웃음을 잃지 않은 그는 '노년의 퇴임법관'의 모습보다는 제2의 인생에 가슴 설레는 '젊은 여행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1981년 9월 임관한 이래 29년간 판결문과 남성 법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는 온전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간 남자들과의 교집합으로만 살았어요.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이제 정말 여유를 갖고 제가 원하는 대로 제 삶을 누리려고 해요."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남편은 저더러 너무 이기적이라고 했어요. 퇴임 전 어느 고법 부장판사님이 오셔서 본인은 공익소송만 하겠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분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진로를 개척하는 법관들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
그는 퇴임한 뒤 무엇을 하며 지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읽고 싶은 책만 봐요. 궁금한 것에 대한 책을 보니 진짜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 같아요. 연구하는 분들은 정말 복을 타고 나신 분들이야. " 29년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건기록을 보고 살았으니 활자라면 지긋지긋할 만도 하건만 역시 '문자중독'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했다.
그가 요즘 읽는다는 책은 주로 사회과학 서적. 약 30년간 본인의 판결을 되돌아보니, 법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고, 이제는 국가와 공권력의 기원에까지 궁금증이 미쳤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들을 읽고 있어요. 최근에는 발터 벤야민이 쓴 <폭력비판을 위하여-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 을 읽었고, 더 거슬러 홉스, 로크 계열을 쭉 보고 있어요. 사실 처음엔 머리 식히려고 시집을 몇 권 샀는데 안 읽히더라고요. 오히려 이론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판사 습관이 남아서 그런가 봐요, 호호. " 폭력비판을>
법관으로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기 위해 남성 법관보다 몇 배 열심히 살았다는 김 전 대법관. 그러나 두 딸의 어머니로서도 성공했을까. 그는 두 딸을 대안학교에 보내 당시 이목을 끌었다. 현재 큰 딸은 일본에서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고, 작은 딸은 국내 모 대학에서 영화감독 수업을 받고 있다. "사실 전 내버려둔 것 밖에 없어요. 제가 신경을 써줄 수 없는 형편이니 자기 길은 자기가 찾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평소 획일적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고요."
김 전 대법관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한 사회'와 관련, 입법ㆍ행정ㆍ사법부가 각각 제 일을 제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입법부에서 공정한 룰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이를 공정하게 적용하고, 사법부에선 룰 적용에 대해 공정한 판결을 해줘야 합니다.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는데, 이는 제 연구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
최근 큰 딸이 지내던 방을 고친 공부방에 하루 종일 칩거한다는 김 전 대법관은 조만간 미국 등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김정곤기자 jkkim@hk.co.kr
정리=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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