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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길을 묻다] (7.끝) 유전무죄, 머나먼 사법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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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 길을 묻다] (7.끝) 유전무죄, 머나먼 사법정의

입력
2010.09.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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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재력 앞 움츠린 法… '법 앞에 만인 평등' 교과서에나

자금난에 빠진 코스닥 업체를 협박해 경영권을 확보한 혐의로 올해 4월 구속기소된 사채업자 A씨와 B씨는 기소 이틀 만에 전격 석방됐다. "피고인의 주장과 관련해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사유였다. 이런 이유라면 애초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어야 할 텐데, 법원은 일단 영장을 발부해 놓고 곧바로 석방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A씨와 B씨의 변호인단에는 해당 법원의 직전 법원장을 비롯한 전직 고위직 법관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사회의 작동원리를 명문화한 게 법이라 할 때 '법의 지배'는 공정사회의 초석이자 최후의 보루다. 법이 가장 권위 있는 사회규범이어야 하고, 법 자체가 공정해야 함과 동시에 법의 적용과 해석 또한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법조계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중고생 1,7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법이 돈이나 권력 있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되는가"라는 질문에 64.7%는 '그렇다'고 답했다. 2008년 수도권의 성인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91%의 응답자가 "법보다 재산이나 권력의 위력이 더 크다"고 했다. '사법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얘기다.

반복되는 유전무죄ㆍ유권무죄 논란

이유는 간단하다. 재벌이나 정권 실세 등 힘 있는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이 대개 '봐주기''면죄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은 그 때마다 나름대로 법리적인 설명을 내놓지만, 일반의 정의감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 집행과정이나 결과를 두고 국민들의 분노나 냉소, 체념이 반복될 경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명제는 허언에 불과하게 된다. 유전무죄(有錢無罪), 유권무죄(有權無罪)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검찰과 법원의 불공정한 사건처리의 배후에는 법조인들의 동업자 의식에서 비롯된 전관예우 관행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전관예우에 대한 기대는 사건 당사자들로 하여금 가장 최근에 개업한 '따끈따끈한' 전관을 찾지 않을 수 없게 해 악순환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구속될 사안이 불구속으로, 실형이 집행유예로 바뀌는 과정 등에서 전관의 힘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때문에 퇴직한 판ㆍ검사들 대부분은 자신의 최종 근무지 주변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있다. 개업 1~2년간 사건을 '싹쓸이'한 뒤, 전관의 '약발'이 떨어지면 안정적인 로펌행을 택한다. 고위직 출신 전관들의 경우, 공식 선임계를 내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변호를 하고 거액을 받기도 한다. 말이 변호지 사실상 사건 브로커나 다름없다.

법조인들은 이에 대해 "인간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나중에 자신의 퇴임 후를 생각하면 전관들의 요청을 아예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책 에서 이러한 관행을 "법조계는 바닥이 좁아서, 한번 찍히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관예우의 폐단을 막기 위해 정치권에선 '퇴직 1년간 종전 근무지 변호사 개업 금지'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법조인들의 반대로 제도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잦은 특혜성 사면도 사법정의 훼손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나 정치인, 공직자 등에 대한 정권의 선심성 특별사면ㆍ복권이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사면 발표 때마다 '국민화합 차원'이라는 설명을 되풀이하지만, 너무 잦은 특사는 국가의 형벌권을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 8ㆍ15 특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임기 중 비리 불관용' 약속까지 깨면서 18대 총선과정에서 공천헌금을 받은 친박연대 인사들에 대해 특별감형을 해 줘 "원칙도, 기준도 없는 특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사법영역의 불공정성과 관련해 "'재판은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금언을 법조인들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팀장은 "국민들의 비판에 대해 법원이나 검찰은 자신들만의 논리를 들어 반박하지만, 이는 국민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는 엘리트주의에 불과하다"며 "외적인 신뢰감도 확보할 수 있을 때, 사법부의 공정성이 뿌리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 현정부 들어 심해진 검찰의 불공정 수사 논란

지난 4월 검찰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두 사건이 있었다. 5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법원의 무죄선고(9일), MBC PD수첩의 '검사와 스폰서'방영(20일)이 그것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가 한 전 총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법원판결에 유감을 표명하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당시 한 간부 검사는 "직접적인 물증도 없고 뇌물공여자의 진술밖에 없는 사건에서 그 진술마저 계속 바뀌는 상황이라면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게 뻔한데,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애초 무리한 기소였다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 검찰은 유죄를 받기 어렵다고 보아 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했던 '금융감독원 간부 및 청와대 행정관 로비의혹' 사건(본보 9월 16일 1면)에서도 검찰은 돈을 줬다는 뇌물공여자의 진술이 나중에 번복되자 기소는커녕 피의자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고, 행정관 관련 진술은 공소혐의에 포함시키지도 않은 채 사건을 종결했다. 이처럼 수사대상에 따라 수사방식이나 기소여부가 달라지는 것 또한 검찰의 불공정한 법 집행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어진 PD수첩의 문제제기는 검찰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검찰의 도덕성이란 곧 '공정함'을 의미하는데, '스폰서 검사'의혹은 검찰수사가 종종 불공정하게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또 다른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할 때 무엇보다 자주 지적되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권력'과의 관련성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정연주 전 KBS 사장,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관련 명예훼손 사건, 그리고 한 전 총리 사건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 들어 '무리한 기소' 논란을 빚었던 사건들이 지금까지 한결같이 무죄 판결이 났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당시 후보자)이 연루된 2008년 BBK 수사나 지난해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직제상으로는 행정부 소속 법무부의 외청 공무원으로 묶어둔 채 수사는 독립적으로 하라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라면서 "정치권에선 검찰권력이 비대하다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무장해제된 상황"이라고 털어왔다. 한 간부급 검사는 "검찰의 도덕성(공정성)과 수사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한쪽이 약해지면 다른 한쪽도 힘을 잃는다"면서 "검찰 인사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공정한 사건처리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 사법정의를 위한 전문가 제언

전문가들은 법원과 검찰의 불공정한 사건처리와 재판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사법시스템 개선과 함께 법조인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선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현 사법부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 원인은 이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관의 인적 구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현재는 대다수가 고위법관 출신인데, 구성을 다양화해야 사회의 다양한 의견도 반영될 수 있다"며 대법원부터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은 투명성 확보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판결문 공개와 더불어 법정을 녹화해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공정사법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사법을 해치는 병폐 중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견제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단기적으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도입해 기소권을 분산시킨 뒤 검찰과 합리적으로 경쟁시켜야 한다"며 "다만 검사를 공수처로 보내면 또 하나의 검찰이 될 수 있어 구성원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장기적으론 미국과 같이 주민이 검사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해야 검사들이 승진을 위해 권력을 보고 기소하는 게 아니고 국민을 보고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인사제도 개선을 근본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현재 검찰의 권력남용을 통제할 장치가 없어 상설특검이나 공수처를 통해 검찰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최근 대검찰청이 도입한 검찰시민위원회에 대해서 "시민참여는 긍정적이나 그 자체로는 역할이 미미하고, 비법률가들이 참여하다 보니 검찰에게 이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검찰 권력의 분산을 거듭 강조했다.

공정사법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하지만, 이에 앞서 법조인들의 의식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김갑배 전 대한변협 법제이사는 "공정한 판결, 공정한 수사를 위해선 법조인들의 인식부터 가다듬어야 한다"며 "법조계에서 이런 논의부터 시작해야 사법정의가 바로 서는 제도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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