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는 녜삐(Nyepi)라는 명절이 있다. 발리 달력에 따라 새해가 시작되는 날을 일컫는다 하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구정 설날쯤이 되겠다. 이 날 발리의 힌두교도들은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도 않으며 밤에는 전등을 켜지도 않는다. 상점들은 하루 종일 문을 닫으며, 차량은 운행을 중단하고, 심지어는 공항도 폐쇄되어 비행기의 이ㆍ착륙이 완전히 중지된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이 날을 고요의 날, 사일런트 데이(Silent Day)라고도 부른다.
용서 구하는 인도네시아의 명절
이 특별한 하루를 함께 누리기 위해 반드시 이 날에 맞춰 발리를 찾는 관광객들도 있다. 차도 안 다니고 음식을 파는 곳도 없으니 만만치 않게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나 고요한 하루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불편쯤은 상관없다 생각할 터이다. 아무리 완벽한 고요 속에 있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 안에 켜켜이 쌓인 것들을 다 씻어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기분일 것만은 분명하다. 관광객들은 그 하루를 위해 돈을 지불한다.
녜삐의 하루를 보내고 난 이튿날, 발리 사람들은 우리 명절날에 그런 것처럼 가족과 친척을 찾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이들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잘못부터, 확인되지 않은 잘못까지, 자신은 알지 못하였으나 뜻밖에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물론 그들은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받는다.
그러니 녜삐의 완벽한 고요가 의미하는 바는 자신을 씻는 것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씻고, 관계를 씻어 내리는 일이 되겠다. 한 번 씻어도 또 쌓이기야 하겠으나 다시 쌓인 것은 내년에 또 씻으면 될 터이니, 녜삐의 하루가 발리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뜻 깊은 하루겠다.
추석 연휴가 길게 지나갔다. 길게 지나간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여전히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한 해가 다 가도록 빨간 날이 하루도 없다니 더 그럴 것이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기만 했어도 아쉬울 터인데 수재까지 겹쳐 더 마음이 자리잡기 힘들 것이다. 오랜만에 뵌 부모님의 얼굴이 사뭇 늙어 보이던 것도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더는 명절을 신나게 여기지 않는 다 큰 자식들의 모습도 새삼 기억에 남을 것이다.
명절 연휴 뒤에 후유증이 남는 것은 여전히 미진하게 느껴지는 휴식 때문이 아니라 새삼스러운 기억들 때문일 터이다. 늘 곁에 있던 가족들도 새삼스럽고,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 같은 삶도 새삼스럽다. 나이도 새삼스럽고, 구하지 못한 직장도 새삼스럽고, 혼자 사는 것도 새삼스럽고, 같이 사는 것도 새삼스럽다. 그리하여 남는 것이 달콤한 휴식의 기억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게도 허전함이다. 마음이 허전해도 세상은 여전히 바삐, 또 급히 돌아간다.
내 어머니의 연세가 올해 여든일곱이시다. 또 한 해의 추석을 같이하여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 참 많은데, 그 마음을 다 뭉뚱그려보니 그저 감사함이다. 그러고 보니 감사와 용서는 같이 붙어 있는 말인 것도 같다.
발리 사람들이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씻어 내린다면,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씻었겠다. 긴 연휴 끝의 허전한 후유증이 남는 것은 그 마음 때문일 터이다. 씻어 내린 만큼 또 채워야 할 것이 있겠다. 새로 채워져야 할 것이 좋은 것들이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각박한 세상을 사는 일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용서와 감사를
그렇더라도 명절은 또 다가올 터이니, 또 감사하고 또 용서를 구해야 할 날이 있지 않으랴. 다만 원컨대 세상 역시 보통 사람들이 보통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식대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도 용서하는 마음도 얼마나 순하겠는가. 이렇게 소박한 소망을 가져보는 것도 어쩌면 명절 뒤의 후유증일지 모르겠으나 그나마 감사한 후유증이겠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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