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늦깎이가 대개 유사하지만,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여성 연출자 김한내(33ㆍ사진)씨는 꽤 문제적이다. “사시 1차에 붙고, 2차 준비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응시했어요. 03학번으로 들어가 5년을 연극 공부했죠.” 예종 2학년 때 본 일본 연극 ‘도쿄 노트’에서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의 연출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가 만든 무대라고 간략히 넘겨 버린다면 이 연극이 깔고 있는 여러 층위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되고 만다. 부산문화재단과 영아트페스티벌의 지원으로 부산 배우들과 합작해 만든 이 무대는 과학창의재단의 융합문화지원사업에서 3,000만원을, 부산문화재단의 영아트퍼포먼스사업에서 배우와 연습장을 지원 받아 이뤄졌다. 이렇게 무대의 사양을 늘어놓는 일은 외관상 볼거리가 많다거나 심상찮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전단계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연극은 지극히 범상하다.
사방이 환한 불빛 아래 진행되는 무대에서 연구원들은 잡다한 한담을 나눈다. 연구실의 일상을 무심히 잘라내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라 해도 별달리 할말이 없을 정도다. 소소한 일상 풍경을 진한 부산 사투리에 실어 열심히 나른다. 각종 기생충의 슬라이드 등 배경에서 연구원들 간의 사소한 충돌, 유머, 이혼 이야기 등 살아가는 이야기가 질펀하게 쏟아진다.
그것은 현실과 무대, 연극성에 대한 김씨의 미학적 선택이다. 그는 “일상의 한 부분 같지만, 실은 연극적으로 치밀히 계산된 사건들이 배치돼 있다”며 “미시적 극사실주의”라고 정의했다. 요컨대 범상한 일상을 연극적으로 재구축해 여운을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 일상 속의 연극성을 재발견해 내자는 것이다. 우리의 비루한 일상에 연극성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극에 미쳐 상식을 한번 뒤집은 김씨에게 이른바 연극의 위기 상황은 또 다른 기회다. 그는 한국 연극이 최근 기형적으로 대중화한 만큼 자연스러운 반동이 따를 것으로 본다. “이젠 상업ㆍ비상업 연극의 선명한 구분이 필요한 때예요. 진정한 연극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봐요.” 그는 다음 작품으로 미국 영어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을 삐딱하게 풍자한 ‘Internationalist’를 번역, 무대화를 가늠하고 있다. 10월 10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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