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에 있는 전등사는 신라시대 사찰로 알려져 있는데 사찰 내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다. 이들 가운데 보물 제 393호로 지정된 문화재가 높이 1.64m인 철제의 전등사범종이다.
이 종은 우리나라 종이 아닌 중국 종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우리의 전통 범종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동종이 아닌 철종이고 우리 옛 종의 가장 특징인 두드려 나는 소리와 관계 있는 용통(甬筒)이 없으며 종을 거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유를 단순하게 고리형태로만 만들었다. 또 몸통에 마련된 여러 가지 조각 역시 닮은 곳이 전혀 없다. 그리고 종의 밑 둘레는 단순한 원형이 아니라 8등분의 파도형상으로 만들어 중국 종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철종은 몸통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중국 허난성(河南省)에 있는 백암산(白岩山) 숭명사(崇明寺) 종임을 알게 되었고 만든 해가 1097년으로 중국 북송(北宋) 철종 13년임이 밝혀졌다. 이는 우리나라 고려 숙종(肅宗) 2년에 해당된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나라에 와서 전등사에 있게 되었는지 연유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다만 광복 후 인천 부평에 있었던 일제의 조병창 즉 병기창고에 있던 것을 전등사로 옮겨 오늘에 보관해 오고 있다고만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의 철종은 이 전등사범종을 비롯 인천시립박물관의 중국 송대철제범종(인천유형문화재 제4호)과 중국 원나라 성종 때인 1298년에 주조된 원대철제범종(인천유형문화재 제3호)외 명나라 숭정제 때인 1638년에 제작된 철종까지 모두 4개가 있다.
이들 중국철제범종은 일제 강점기 말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대륙침략에 필요한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집의 숟가락까지 공출이란 이름으로 거둬들인 한편 중국각지에서 거둬들인 쇠붙이를 녹여 필요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부평의 조병창(造兵廠)에 모아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제는 전쟁에 패해 조병창은 그대로 두고 일본으로 쫓겨 갔다.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정이 시작되자 당시 인천시립박물관 초대관장으로 있던 이경성(李慶成, 2009년 타계)이 광복되자 미군정과 교섭하여 중국철제범종 3개를 비롯 청동화로 2점, 청대수형대포 1점을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오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이 종은 '전등사범종'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었지만 그러나 전등사에서 필요로 해 만든 전등사종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전등사종이라 할 수 없고, 다만 전등사에서 보존해 보호하고 있는 종에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이 종의 명칭은 전등사 소장 중국철제범종으로서 차라리 중국의 '백암산 숭명사철종'으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물론 종에 대한 설명문을 보면 충분히 종의 내력을 알 수 있겠지만 명칭만 보아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종에 대한 예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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