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아주 끔찍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기 여섯을 방에 가두고는 유모들에게 정성껏 돌보되 단, 절대로 말은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이 자연히 체득하게 되는 말, 즉 '본원적 언어'가 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황제는 당시 가장 순수한 언어라고 믿었던 라틴어가 아닐까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언어로든 말을 하기 시작한 아기는 아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날로 쇠약해져 결국 모두 죽고 말았다. 소통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요소였던 것이다.
■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분수대가 헐리고 지금처럼 상시 접근 가능한 서울광장으로 바뀐 건 겨우 6년 전이다. 두 해 전의 월드컵열기가 다양한 활용에 착안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전에는 가끔 주요 정부행사나 열리던, 평소엔 그저 휑한 교통섬이었을 뿐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원래 서구적 의미의 '광장문화'란 없었다. 다만, 서울광장은 1919년 고종 장례식 때 덕수궁 앞의 애도물결이 3ㆍ1독립운동으로 번져나간 뒤 4ㆍ19혁명, 6월항쟁 등으로 근ㆍ현대사의 고비마다 역사적 상징성을 얻었다. 우리의 광장문화가 곧 저항운동을 연상케 하는 이유다.
■ 서울시가 서울광장 개방을 걱정하는 것도 이런 저항공간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광장 사용을 신고제로 바꾼 개정조례안을 서울시의회가 직권 공포함에 따라 이제 누구든 신고만 하면 여기서 집회 시위가 가능하게 됐다. 허가제를 유지하되, 중립적 시민위원회에 심사를 맡기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어쩌랴. 내달 초 설치될 열린광장운영 시민위원회가 신고내용을 심사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어쨌든 모양상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춘 셈이다. 그러니 서울시는 더 이상 법적 대응 운운하지 말고 일단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 서울광장 개방을 요구해온 이들의 명분은 물론 소통의 광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이곳에서 소통을 경험한 기억은 솔직히 별로 없다. 보수, 진보진영 어느 쪽에서 연 집회든, 나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완강한 전체주의적 살벌함만 매번 느꼈을 뿐이다. 현안을 놓고 생각이 다른 이들이 번갈아 단상에 올라 열띤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망상일까? 소통은 인간 개인을 넘어 국가사회의 생존과 발전에도 필수적인 요소다. 서울광장을 진짜 열린 소통의 장으로 만들 책임은 이제 시민 모두에게 넘겨졌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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